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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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6.

노래책시렁 454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

 2014.1.14. 



  얼핏 말을 꾸미는 분이 있을 텐데, 모든 꾸밈말은 이내 드러납니다. 꾸밈없이 말하는 분이 있고, 꾸밈없이 하는 모든 말은 늘 스스럼없습니다. 꾸밈말로는 겉보기에 반지르르합니다. 꾸밈없는 말로는 겉을 안 따지고 안 쳐다봅니다. 안 꾸미기에 늘 마음을 들여다보거든요. 《사진관집 이층》에 드러나는 꾸밈말을 한 올씩 걷어내 봅니다. 속으로 야무지다면 구태여 안 꾸밉니다. 손수 살림을 짓는 사람은 굳이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설거지를 하는데 뭘 꾸밀까요? 그저 설거지를 정갈하게 마칠 노릇입니다. 밥을 하는데 왜 꾸밀까요? 즐겁게 나눌 밥 한 그릇을 할 뿐입니다. 빨래를 하면서 왜 꾸미겠어요? 옷가지에 묻은 때랑 얼룩이랑 먼지를 말끔히 씻고 헹구는 길에 온마음을 쏟을 노릇입니다. 예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 글밥을 먹는 분들치고 집안일을 스스로 하는 분이 매우 드뭅니다. 손수 집을 돌보고, 밥을 짓고, 쓸고닦고, 아기를 보면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고, 아기한테 모든 말을 가르치면서 언제나 함께 놀고, 빨래를 해서 널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고, 밭을 짓고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 이런저런 집안일을 글(시·소설·수필)로 고스란히 담은 글바치는 몇일까요? 집살림으로 ‘문학’을 안 하니, 다들 꾸미기만 합니다.


ㅅㄴㄹ


훌훌 벗어던지고 그 여자는 / 하얀 몸을 물속에 숨긴다. 날렵한 인어다. / 정신이 어지럽다. 주저한다. / 저 옷을 감추어 그 여자를 지상에 묶어둘거나. // 그러나 내 번민은 부질없다. 잠시 뒤 / 물속에서 나온 그 여자 / 옷 아무렇게나 버려둔 채 / 꽃같이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오니 / 세속의 어지러운 바람에 취했으리. (몽유도원夢遊桃源/38쪽)


그의 운전기사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 / 주인 대신 그가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 다만 라면을 배급받는 긴 행렬 끝에 / 배가 부른 그의 젊은 아내가 / 다섯살짜리 딸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을 뿐이다. / 그녀의 눈은 말라 눈물도 없다. // 가상(假相)과 실상(實相)을 다 사랑한다는 것일까.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88쪽)


+


《사진관집 이층》(신경림, 창비, 2014)


세속의 어지러운 바람에 취했으리

→ 둘레 어지러운 바람에 홀렸으리

→ 어지러운 밖바람에 사로잡혔으리

38쪽


가상(假相)과 실상(實相)을 다 사랑한다는 것일까

→ 거짓과 참을 다 사랑한다는 말일까

→ 덧없든 민낯이든 다 사랑하는가

→ 겉과 속을 다 사랑한다는 말일까

→ 껍데기와 알맹이를 다 사랑할까

8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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