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서울에서 부산으로 (2024.11.30.)
― 부산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부산 벡스코에서 여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 가 보았습니다. 부산에서 꽤 크게 펴는 책잔치인 만큼, 부산사람이 부산살림을 헤아리면서 여미는 책이 하나쯤 나란히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부산 책지기님하고 《파란씨·앗》이라는 꾸러미(잡지) 걸음마(창간준비호)를 엮어서 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름은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지만, 막상 부산을 들려주거나 말하거나 알리거나 나누는 책은 하나도 없겠다고 여겼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서울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을 하듯 부산에서도 똑같은 판을 벌입니다. 크기도 얼거리도 줄거리도 판박이입니다. 봄에 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을 고스란히 옮겨서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라고 붙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동’이란 한자말은 한참 낡았습니다. 또한 이 자리에 찾아오는 어린이 가운데 ‘국제도서전’이 무슨 뜻인지 얼마나 알까요? ‘라퓨타’를 누가 알까요?
옆나라 일본에서 내놓은 만화영화에서 딴 이름을 안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나중에 ‘대여섯 판’쯤 이런 자리를 꾸린 뒤에라면 어울릴 테지만, 첫 책잔치라면, 바로 부산스럽게 우리말로 ‘어린책잔치’를 꾸려야 맞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보내는’ 판으로 꾸려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나쁘지는 않으나 좋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미 ‘도떼기판’으로 꾸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라는 이름을 씌워서 편다면, 그야말로 책이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책을 굳이 조용히 읽어야 하지만은 않습니다만, 요즈음 책숲(도서관)을 어떻게 꾸미는지 살펴야 할 텐데요.
이제 책숲은 책시렁만 빽빽히 안 놓습니다. 쉬고 앉고 두런두런 얘기할 자리를 훨씬 넓게 둡니다. 〈부산국제아동도서전〉뿐 아니라, 이 나라 모든 책잔치는 책걸상과 쉼터를 한복판에 놓을 노릇입니다. 모든 펴냄터가 똑같은 크기로만 나와야 합니다. ‘자리값(부스 판매)’은 몽땅 걷어치우고서, 작고 알차며 아름답게 어린책과 푸른책을 펴내는 곳을 목돈 들여 모셔야 합니다.
이름난 글바치·그림바치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모시”지 말고, 나라 곳곳에서 조용조용 어린이 곁을 지키고 푸름이 둘레를 돌보는 ‘작은어른’을 불러야 어울립니다. 부산에서 펴는 한마당에 부산책은 어디 있나요? 서울사람이 부산잔치를 꾸려도 안 나쁘지만, 거꾸로 부산사람이 서울책잔치를 꾸려도 어울린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갈 노릇이고, 이제는 생각부터 바꾸고 판을 갈아엎을 일입니다. 부산책잔치에 ‘서울국제도서점 기념품’을 넓게 펴서 팔기까지 하는데, 할 말 없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