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1.30. 밤 같은 새벽
밤 한 시에 일어난다. 글일을 추스르고 씻고 물 한 모금 머금고서 짐을 꾸린다. 하루글을 쓴다. 어제도 그제도 일찍 잠드느라 하루글을 이틀 밀렸다. 이제 등짐을 메는 새벽 여섯 시. 큰아이가 일어나서 배웅을 한다. 우리 보금숲에서는 아직 밝은 별을 본다. 겨울 앞둔 들은 조용하다. 낮에는 조롱이도 날고 매도 운다. 기러기에 오리가 작게 무리지어 하늘을 가르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파란별은 들숲바다가 가장 넓고 깊다. 제아무리 서울이 커 보여도 시골 작은숲보다 한참 작다.
새벽에 흰불을 번뜩이며 마구 달리는 쇳덩이가 제법 있다. 이들은 눈에 암것도 안 뵐 수 있다. 눈에 뭐가 뵌다면 진작에 들길이며 골목길을 거닐며 밤과 낮과 새벽과 아침을 온몸으로 누리고 웃으리라. 웃을 줄 모르니 자꾸 밖으로 나가고 손전화에 고개를 박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도 멀거니 하늘과 구름을 보았는데 어느새 다들 하늘빛을 잊다가 잃는다.
빛은 누구나 속으로 품는다. 볕은 누구나 가슴에서 피어난다. 사랑은 누구나 스스로 심는 생각에서 비롯하여 샘물로 퍼진다. 별을 헤아릴 줄 모르면서 꿈씨를 그리지 않고, 해를 마주하지 않으면서 시름시름 앓는다. 나무는 어떻게 그리 넉넉히 살며 푸르겠는가. 풀은 어떻게 해마다 새로 돋으며 반짝반짝 춤추겠는가. 맨몸으로 해를 먹고 비를 마시고 이슬로 씻고 별하고 노래하기에 노상 튼튼하고 곱다.
밤 같은 새벽은 지나갔다. 이제 아침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