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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ㅣ 장진영 만화모음 3
장진영 지음 / 정음서원 / 2020년 10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31.
까칠읽기 38
《나선》
장진영
정음서원
2020.10.12.
《나선》(장진영, 정음서원, 2020)을 읽고서 여러모로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닌 줄거리를 다룬다고 할 만하다. 나도 이미 1994∼1999년 사이에 ‘대학교 운동권’이 어떤 민낯인지 환하게 겪고 본 바 있다. 그림꽃 《나선》은 그야말로 민낯을 그려낸다. 뒤틀리고 시커먼 이 나라를 바로잡거나 갈아엎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먹물’은 똑같이 ‘시컴물(시커먼 더럼물)’이었다는 대목을 차분히 풀어낸다. 38쪽에도 나오듯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독재자!!”나 “교주!!”라는 말처럼, 숱한 ‘대학교 운동권’은 또 다른 독재와 교주 노릇을 했다. 아무리 안타깝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털고 씻고 치울 창피한 민낯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창피한 민낯을 안 털었고 안 씻었고 안 치웠다. ‘국민’이란 이름을 앞세우는 무리도 허울스럽고 껍데기일 뿐 아니라, ‘민주’와 ‘정의’와 ‘녹색’이란 이름을 앞세우는 무리도 허울스럽고 껍데기이다. 이들은 크고작은 그릇만 다를 뿐, 똑같이 엉큼질(성추행)에 뒷돈에 막짓(갑질)을 일삼았다. 이들은 입으로는 옳거나 바르거나 참되게 나아가겠다고 밝히지만, 정작 엉큼질과 뒷돈과 막짓을 멈추지 않는다.
보라, 어느 국회의원이 걸어다니는가? 어느 시장과 군수가 버스를 타는가? 어느 장관이나 기관장이 두바퀴(자전거)로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는가? 그런데 높은자리 벼슬꾼뿐 아니라 여느 벼슬꾼도 안 걷고 버스를 안 타고 두바퀴를 안 달리기 일쑤이다. 높건 낮건 모두 쇳덩이(자가용)에 갇힌 채 ‘사람들(이웃)과 동떨어진 곳’에 가만히 앉아서 책상물림 먹물바치 노릇이다.
190쪽에 나오는 “현장에 갔던 사람들은 다들 돌아왔는데, 걔만 유독 그러네.” 같은 말이 ‘운동권 민낯’을 잘 드러낸다. 참말로 제대로 너울을 일으키려고 했던 이들은 그곳(현장)에 그대로 남아서 살림을 짓는다. 이와 달리 한몫 잡는 ‘이름(빛나는 경력)’을 얻으려고 했던 이들은 ‘운동권·농활·공활·위장취업’이라는 보람(훈장)을 주렁주렁 달고서, ‘국민·민주·정의·녹색’이라는 이름을 떵떵거리듯 높인다.
보라, 이들 가운데 서울 아닌 시골에서 텃밭을 짓는 살림을 꾸리며 아이를 돌보는 이는 몇이나 있는가? 아니, 있기나 한가? 이들 가운데 ‘양복·자가용·아파트’를 처음부터 손에 안 쥐면서, 수수한 차림새로 걸어다니는 이는 몇이나 되는가? 아니, 있기나 한가?
그들은 심부름꾼이 아닌 벼슬꾼이자 ‘독재자·교주’라고 여겨야 맞다. 그들은 ‘독재자·교주’이기 때문에 ‘자가운전’조차 안 하면서 ‘운전수’를 둔다. 까맣고 커다란 쇳덩이에 운전수를 둔 모든 이들은 ‘정치·행정’을 하는 일꾼이 아닌, 그저 돈바라기 독재자·교주일 뿐이다.
ㅅㄴㄹ
“세상 많이 좋아졌네. 여자가 당구를 다 치구!!” (15쪽)
“자네 집안에 좌익활동을 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네 부모한테 물어보면 잘 알지 않겠나?” (22쪽)
“ㅊㄱ을 읽다 보니 소중한 게 뭔지를 알겠더구나! 좌익이니 우익이니 이런 거 모를 때 말이다, 우리 농촌에는 서로 돕고 아끼는 훌륭한 전통문화가 있더구나.” (29쪽)
“삼춘이 말씀하시던 운동은 이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이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차이는 무얼까?” (35쪽)
“이동수 선배는 신이더라구! 살아 있는 신!! 킥킥. 교주!!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독재자!!” “글쎄? 나도 잘 모르지만, 그만큼 뛰어나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 역사를 보더라도 위인은 항상 있었고, 위대한 사상가는 한 시대를 좌우했잖아.” “그런 거완 차원이 달라!! 어떻게 다들 한 사람의 의견을 아무런 문제 없이 맹종할 수 있느냐 이거지!!” (38쪽)
“이동수 선배는 형사들이 올 줄 알고 있었니?” “응!” “어떻게 알았지?” “사실은, 우리 화실이 모임장소였거든!!” (58쪽)
“어쨌든 고맙네요. 우리 일인데.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 줘서. 하지만 갑자기 허전해진 건 사실이에요. 이런 생각 하면 안 되겠지만, 형이 그동안 우리에게 베푼 호의가 꿍꿍이속에서 나온 것만 아니겠지요. 형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우린 다르니까요. 우리야 어쩔 수 없는 노동자 신세지만, 형은 갈 곳이 많은 사람이에요.” (115쪽)
“이동수 선배님은 만나봤니?” “민중당 활동을 한 이후로 거의 만나게 되질 않아!” (155쪽)
“유능한 인권변호사와 촉망받는 여류화가께서 화촉을 밝히는데, 허허.” “소문에 선배님은 정치에 손을 끊으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손을 끊은 건 아니고, 당분간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해야겠어!” “참! 복학은 하셨죠?” “응! 한 학기 남았지!! 이 나이에 학교에 다닐려니 후배들하고 세대차가 느껴지더라고!!” (185쪽)
“첨! 옹접이는 왜 얼굴이 안 보이지?” “…….” “아직도 현장에 있나?” “사실 나도 바쁘긴 했지만,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오랩니다.” (186쪽)
“신혼 살림집은 어디다 구했나?”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입니다.” “그래! 그럼 이제 발바닥 맞을 일만 남았군!” “어이쿠, 살려 주십시오.” (187쪽)
“다들 왔는데 옹접이만 빠졌어!” “현장에 갔던 사람들은 다들 돌아왔는데, 걔만 유독 그러네.” (190쪽)
+
나도 아들딸 한 타스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잉
→ 나도 아들딸 열둘 낳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잉
→ 나도 아들딸 꾸러미로 낳고 잘살아야 하지 않겠어요잉
13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