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0.20. 철렁
마감을 까맣게 잊었더라. 엊저녁에 뒤늦게 깨달았고, 밤까지 이 일 저 일을 살피다가 새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맺고, 아침에 얼른 글을 보냈다. 뒤늦은 마감글을 알아채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나 허둥지둥으로 지낸 요 열흘이자 보름이었기에 잊었는가 하고 뉘우친다. 부끄럽다.
그런데 뒤늦은 마감글을 여미다가 “노벨글보람 한강 씨 이야기”를 곁들일 수 있었다. 한강 씨는 글님(작가)이 고작 쉰∼예순이란 나이가 빛철(황금기)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더라. 설마 참말 이렇게 말했나 싶어 갸우뚱했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데, 이런 ‘말이 안 되는 말’을 ‘노벨글보람을 받은 느낌’으로 사람들 앞에서 했다니 더 놀랍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자. “일하는 전태일”이 서른 살이나 마흔 살까지 더 살 수 있었어야 어마어마한 글을 남겼을까? “나는 거지입니다” 하고 밝히면서 겨우겨우 눈물글을 여민 권정생 할아버지는 더 글을 쓸 만한 나이가 아닌 일흔 살에 이르렀기에 “안 읽을 만한 글”을 남겼을까? 고작 마흔 첫머리에 그만 물살에 휩쓸려 사라진 “노래하는 고정희” 님은 쉰 살에 이르지 못 했기에 ‘빛나는 글’을 못 남겼을까?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은 예순 살이 넘고 나서야 겨우 붓을 홀가분하게 쥐고서 그림을 빚었고, 일흔 살이 넘어서야 첫 책을 선보일 수 있었으며,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쩌렁쩌렁 빛나는 말씀을 남기다가 아흔둘 나이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글을 쓰건 집안일을 하건 흙을 만지며 논밭을 일구건 마감(정년)은 있을 턱이 없다. 시골 흙지기는 하나같이 “일흔은 막내요 여든은 젊은이요 아흔은 흔한”데, 아흔 살 할매할배가 짓는 논밭에서 나오는 쌀과 낟알과 열매를 먹고서 살아갈 한강 씨가 섣불리 “쉰∼예순 빛철 타령”을 해도 될는지 곱씹을 노릇이라고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