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0.7.
숨은책 943
《산체스네의 죽음》
오스카 루이스 글
구연철 옮김
청년사
1979.6.30.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가난’이 무엇인지 알면서 돕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 알쏭합니다. 가난하지 않기에 가난한 사람을 딱하게 여기지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이웃’으로 삼는다면 ‘돕기’에 앞서 ‘어깨동무’부터 합니다. 나란히 서는 동무로 마주볼 때라야 비로소 도울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볼 적에는 ‘돕기’가 아닌 ‘동냥’입니다. 《산체스네의 죽음》은 “살았을 적에도 한몸 누일 자리가 빠듯”하던 가난한 사람이 “죽은 뒤에도 주검 누일 자리가 빠듯”하기에 고단한 하루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둘레를 봐요. 아무나 무덤을 쓰지 못 하고, 누구나 뼛가루를 모시지 못 합니다. 무덤이고 뼛가루이고 한 뼘만 한 땅에조차 못 놓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널따란 땅뙈기에 무덤을 쓰는 사람도 꽤 많아요. 부릉부릉 빵빵거리는 쇳덩이가 지나다니는 길은 온나라 구석구석 넓습니다만, 가난한 이가 두 다리로 걸어다닐 길은 매우 좁을 뿐 아니라, 골목에서조차 쇳덩이한테 비켜서야 합니다. 숱한 벼슬터(공공기관)는 왜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가난하지 않기에 “가난한 사람이 쓰는 말”을 모르고, ‘수수한 말’도 ‘쉬운말’도 ‘삶말’도 모르니 ‘견강부회’입니다. 어설프고 어줍잖게 일본말씨입니다.
역자는 되도록 우리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말로 번역하려고 하였으나 견강부회가 되지 않았나 두려울 뿐이다. (156쪽/역자의 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