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 1956-1961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
윤이상 (Isang Yun) 지음 / 남해의봄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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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5.

인문책시렁 375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11.5.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마음에 남습니다. 종이에 적어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입으로 내는 소리도 곰곰이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한 다음에 흐르고, 종이에 담는 글도 찬찬히 마음을 쓰고 헤아린 다음에 흐릅니다.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둘한테만 남는 이야기입니다. 종이로 주고받는 말은 둘을 넘어서 이웃이며 둘레에도 남길 수 있습니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은 윤이상 님이 이녁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꾸립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 자취를 이 글월꾸러미로 읽고, 사랑으로 만나서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하던 나날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떠난 분이 남긴 글월을 돌아봅니다.


  함께 낳아서 함께 돌보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함께 아름다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대학교 졸업장’을 얻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의사’를 비롯한 돈을 잘 벌거나 이름을 날리는 일거리를 맡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 ‘필수의료’를 맡을 돌봄이가 한참 모자라다고 하지만, 돌봄이가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숱한 돌봄이는 돈을 벌려고 할 뿐입니다. 앞으로 의과대학을 늘리더라도 ‘필수의료’는 늘릴 수 없어요. 다들 돈 때문에 돌봄이라고 하는 종잇조각(자격증)을 얻으려고 할 뿐이거든요.


  이 나라 앞날을 헤아리는 어른이라면 ‘의대정원 늘리기’가 아니라 ‘시골 흙일꾼 늘리기’부터 해야 합니다. 어느새 이 나라 시골 논밭일을 ‘이 나라 젊은이’가 아닌 ‘이웃나라 젊은이’가 도맡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돌봄터(병원)를 아예 안 갈 수 있으나, 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어요. 우리는 어쩌다 돌봄터에 갈 수 있지만, 날마다 먹는 밥을 스스로 짓지 않으면 다 굶습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곳은 시골이요 논밭입니다. 몇몇 땅임자한테 뒷돈을 챙겨 주는 뒤틀린 길을 걷어치우고서, 논밭일꾼으로 지내고 싶은 누구나 ‘손수 가꿀 땅’을 장만해서 시골에 뿌리내리도록 이바지하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윤이상 님이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묶은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펴면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39쪽)”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흐릅니다. 모든 벼슬아치(공무원)는 밑일삯(최저임금)에서 열 곱이 넘는 일삯은 받지 못 하도록 틀을 잡아야 할 테고, 조금이라도 뒷돈을 챙겼다면, 그들이 챙긴 뒷돈에 열 곱을 더한 값을 뱉어내는 틀을 단단히 세울 노릇입니다. 굳이 그들 잘못을 따져야(재판해야) 하지 않아요.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따라 “열 곱 물어주기”만 시키면 되고, 열 곱을 다 뱉어낼 때까지 사슬살이(감옥살이)를 시키면 됩니다.


  그나저나 윤이상 님은 “답장이 늦다”면서 자꾸 골을 냅니다. 글월이 늦는 곁님한테 투덜대는 모습은 여러모로 사랑스럽습니다. 이 작은 골부림과 서로 아이를 바라보는 손길이 더했기에, 둘은 다르면서 하나인 살림길을 지으려고 뚜벅뚜벅 걸어갈 만했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훌륭한 문장은 절대로 과장하는 데 있지 않소. 마음의 알맹이를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남의 가슴을 찌른다오. 추상적인 문구의 되풀이는 오히려 흥미를 깨뜨리는 법이니까. 여보, 당신과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나의 향수가 사실인즉 나의 피요, 나의 정신을 길러주는 원천이오. (30쪽)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나머지 여생을 신선처럼 지내요. 아, 얼마나 아름다우냐. (39쪽)


파리에서 일본 정부의 선전은 대단하오. 대부분의 프랑스사람, 또 여기 오는 외국 사람들은 일본에 한번 가고 싶어 하오. (61쪽)


여보, 당신이 편지를 늦게 내는 바람에 내가 화가 났소. 그래서 당신이 밉소. (90쪽)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매일을 보내오. (109쪽)


여보,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의 깊은 애정을 다하오? 절대로 나무라지 마오. 곱게 타이르고 타일러도 안 될 때는 그만 두오. 그것을 고치려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요. 어른들의 욕심은 어른들의 주관인데 아이들은 어른과 같은 주관을 갖지 못했으니까 강요하는 것은 무리요. (138쪽)


당신의 편지는 언제든지 늦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때는 화가 많이 나서 감당할 수가 없소. 그리고 우리 정아 쓰던 피아노는 절대로 팔지 말고 정아가 사용할 수 있도록 두고 와야 하오. 그럼, 당신에게 뜨거운 뽀뽀를 낭군이. (293쪽)


+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


수림에 싸인 호수 안에는 밤인데도 보트를 타는 선남선녀들이 빨간 초롱을 달고

→ 숲에 싸인 못에는 밤인데도 배를 타는 사람들이 빨간 촛집을 달고

→ 너른숲에 싸인 못에는 밤에도 배를 타는 곰네가 빨간 촛불집을 달고

15


행복이란 것, 안식이란 것, 아무 걱정 없는 인생, 생활의 무풍지대를 말하는 거야

→ 기쁨이란, 아늑이란, 아무 걱정 없는 삶, 고요한 삶이야

→ 즐겁고 포근한 삶이란, 아무 걱정 없고 고요한 길이야

20


강태공의 생활도 당신과 같이 할 수 있다면

→ 낚시꾼 삶도 그대와 같이 할 수 있다면

30


달을 쳐다보니 만월이 아니겠소

→ 달을 쳐다보니 둥글지 않겠소

→ 하늘을 보니 보름달 아니겠소

34


한번 야심작으로 나의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고

→ 당차게 내 힘을 뽐내 보고 싶고

→ 배짱으로 나를 드러내 보고 싶고

→ 나를 힘차게 펼쳐 보고 싶고

43


그의 강의는 대단히 밀도가 있고 철저해요

→ 그는 대단히 꼼꼼하게 빈틈없이 가르치오

44


순회공연은 약 10개국의 35명이 참가하는데 내가 정식으로 그 단장을 위촉받았으니

→ 바람마당은 열 나라 서른다섯 분이 함께하는데 내가 길잡이를 맡았으니

→ 맴돌꽃은 열 나라 서른다섯 사람이 같이하는데 내가 길꽃을 맡았으니

19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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