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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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길에서 만난 사람들
- 글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7.2007.7.9.)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22 ― 한가위에 선물할 책 하나
 : 하종강,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으며


 

 〈1〉 명절날 사람들



.. 그렇다. 사람은 ‘사상’이 아니라 ‘삶’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  (태준식 / 73쪽)


 엊저녁,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린 다음, 이곳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에 들러 명절 인사를 드리고 책을 구경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과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옆과 앞에 이주노동자 여럿이 앉습니다. 이들은 크고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한테도 우리처럼 한가위 명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향나라에 남기고 온 식구와 동무 들이 있을 테지요. 오로지 돈만 벌고자 온 한국땅이라고 하나, 나라밖까지 힘겨이 찾아온 이들한테 우리들이 내밀 손길은 ‘품삯 적은 일자리’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회사이든, 회사 우두머리를 아버지로 여기고 일터를 집안처럼 생각하며 정성껏 연장을 돌보고 땀흘려 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몸을 아늑히 쉴 수 있도록, 명절날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마음풀이를 할 수 있도록, 말과 물이 선 땅에서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지 않도록 힘쓰는 일 또한 ‘아버지로 여겨질 회사 우두머리’가 할 일이요 우리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눈길을 둘 일이라고 느낍니다.


.. “80년대의 헌신성을 강조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선배들에게는 뭐라고 대꾸할 수 있을까요?” 황씨의 대답은 뜻밖에 쉬웠다.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더 많이 누리며 살고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에요.” ..  (황정란 / 288쪽)


 느즈막이 인천으로 돌아와서 통닭집에 들릅니다. 통닭집엔 저희와 다른 손님 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손님 둘은 바로 옆에 저희가 있는데에도 소리높여 서로를 깎아내리고 욕까지 곁들이면서 싸웁니다. 계단에서 얼핏 마주쳤을 때, 저보다 대여섯 살쯤 어려 보이는 젊은 부부입니다. ‘집안일 도와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언제 아이하고 놀아 준 적이 있느냐’고, ‘너는 뭐가 잘났느냐’고 …… 거침없이 싸우는 둘이는 며칠 뒤 맞이할 한가위 명절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쇨까요.

 밤늦게까지 길거리장사 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은 한가위 명절을 맞이한 그날에도 손수레를 끌고 이곳까지 나와서 장사를 할까요. 설이든 한가위이든 전철과 버스는 다닙니다.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옵니다. 손잡이를 딸깍 하면 가스가 나오고 단추 한 번 누르면 뜨신 물이 나옵니다. 24시간 편의점 불은 언제나 밝고 약국 불은 그예 들어올 생각을 안 합니다. 명절에는 쉬면서 피붙이와 옛동무를 만나야겠다는 사람도 많겠으나, 명절 대목을 놓칠 수 없다며 여느 때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분도 많겠지요.

 선물을 안고 들고 고마운 어른을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저처럼 벌이가 밑바닥인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고마운 뜻을 보냅니다. 자가용에 선물보따리를 싣고 아이를 태우고 피붙이들을 한 사람씩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택배로 선물보따리를 보내는 분도 많습니다. 문득 궁금한 생각 하나.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느 날에도 저녁 늦게까지 바삐 일하는데, 명절날에 ‘쉼표 찍는(비번)’ 사람이 있을는지.


.. “평범하고 조용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소녀 김효선은 본래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고3이 되었을 때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은 의사가 된다 해도 환자를 직접 치료하기는 어렵고 연구직 의사로 일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어릴 적부터 가져 온 꿈을 포기하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환하면서 특수교육학을 선택했다 ..  (김효선 / 130쪽)


 언제부터 명절날 고향을 찾아간다며 법석을 떨었을까요. 언제부터 우리들은 고향을 떠나 ‘고향 아닌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일자리를 얻으며 살게 되었을까요. 고향은 명절날 돌아가면 되는 곳일까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굴러갈 수 있다고 하는 요즘 세상인데에도, 꼭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만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야 하는가요.

 태어난 고향에서 일자리 마련하며 살 수는 없을까요. 자라난 고향에서 마을 문화와 삶터를 가꾸거나 돌보거나 추스르거나 다독이면서 이웃사촌을 이루어내며 살 수는 없을까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얼마나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하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나야 하며, 얼마나 훌륭한 아파트를 마련해야 하며, 얼마나 신나는 놀이문화 시설 들을 누려야 하나요. 얼마나 빠르고 크고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굴려야 하고, 얼마나 곱고 멋있는 옷을 입어야 하며, 얼마나 맛나고 기름진 밥을 먹어야 하나요.


 〈2〉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 “종교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자선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마땅한 거야. 전쟁 직후 폐허에서는 교회가 학교나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돈 벌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학교나 병원 사업이야. 더 이상 종교 주식회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 노동자들이 큰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신부님들이 ‘우리도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야. 성직자들조차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천시 풍조에 물들어 있는 거지.” ..  (박순희 / 168쪽)


 오늘 저녁, 도서관 문을 닫고 나서 전철을 타고 일산으로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전철을 타고 용인까지 간 다음, 두 다리로 걸어서 음성에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음성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 볼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니라고 놓은 길이었으니까요. 사람 다니라고 놓은 길에 자동차만 씽씽 달리고 있지만, 길에서, 또 길을 둘러싼 마을에서, 또 길을 옆으로 한 사람들 삶터와 자연 삶터에서 이 길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습니다. 이 한가위 명절에.


.. “지난해에 충북에서만 농가 부채 때문에 여섯 명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어. 농가 부채가 왜 생기는지 알아? 퇴비 공장 하나만 봐도 그래. 환경친화 사업이라고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고 농민들은 전 재산 털고 담보 잡혀 가면서 거금을 융자받아 투자했지. 현실성 없어서 전부 다 망했어 ……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증 섰던 일가친척, 동네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빚에 허덕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정부의 농업 정책 실패 때문에 생긴 농가 부채인데,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지 …… 그 와중에 농협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 농협 이자가 12퍼센트야. 시중 이자보다 오히려 더 비싸. 이건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완전히 장사꾼들을 위한 농협이야” ..  (안순애 / 38∼40쪽)


 자가용이든 버스든 택시든 기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더 빨리 달리는 탈거리에 몸을 실으면, 씽씽 지나쳐 버리는 길가와 동네와 자연 삶터를 ‘구경거리’로만 느낄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자전거를 몰아야, 또 자전거를 느긋하게 몰아야, 또 자전거를 몰면서도 자주 쉬어 주어야 찻길과 찻길 옆 마을을 ‘구경거리 아닌 우리 삶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꾸욱꾸욱 땅을 밟고 걸을 수 있다면,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고개 숙여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길을 걸으며 먹다 남은 비닐봉지를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겠지요.

 길에 ‘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이,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 문화를 무너뜨리는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을 아주 작은 힘으로나마 알뜰히 가꾸고자 애쓰는 사람이 ‘내 이웃이 아파하거나 힘들어할 때’ 모르쇠로 지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 아픔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세상이 어수선하고 법 아닌 법이 판칠 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 “휴게소에서 앞으로 몇 년쯤 더 일할 생각이냐” 하고 물었을 때, 이경순 씨는 “정년퇴직할 때까지요”라고 답한 뒤 야무지게 덧붙였다. “우리가 그런 곳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한 번 취업하면 퇴사하기 싫은 직장으로, 그런 평생직장으로 우리가 만들고 말 거예요.” ..  (이경순 / 87쪽)


 전철간에서 내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얼굴빛 없이 지나가고 마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한테 욕지꺼리 내뱉고 위협운전하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돈 적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조촐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고 있는 터전에 포크레인 삽날을 밀어붙이며 ‘재개발-도시정화’를 하겠다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사람과 시장과 군수 들도 우리 이웃입니다. 수십 수백만 신도를 거느리며 몸집이 커지기만 하는 교회 목사님도 우리 이웃입니다.

 열무 1500원어치를 사는데 떨이라고 하며 돈을 더 안 받고 1500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저잣거리 아주머니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살그머니 뒷등을 깜빡이면서 안전거리 마련하여 뒷차를 막아 주는 운전기사도 우리 이웃입니다. 아무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기꺼이 몸과 시간을 바쳐서 우리 삶터 구석구석 그늘진 곳까지 찾아와 땀흘리는 자원봉사 활동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날마다 먼지 뒤집어쓰면서 헌책 하나 캐내어 꼼꼼히 손질한 다음 책시렁에 갖추어 놓으며 ‘좋은 책 알아볼 책손’을 기다리는 헌책방 일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 “피해자들은 평생 입 다물고 어둠 속에 숨어 울며 살았는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살았던 이 더러운 세상을 내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발끈을 야물게 고쳐 매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박영란 / 59쪽)


 어젯밤 누군가 술 체한(‘술 취한’이 아닌 ‘술 체한’이라고 느낍니다. 술도 안 받으면서 꾸역꾸역 집어넣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온통 뒤틀려서 체하고 마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며 병을 집어던져 깨뜨리는 소리가 살림집까지 들려왔습니다. 아침에 길에 나가 보니 병조각이 그대로 있습니다. 술병 깨져 어지러진 이 골목길을 누가 치워야 할까요. 술병 집어던진 이는 자기가 한 짓을 떠올리고나 있을까요.


 〈3〉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은


 한울노동문제연구소를 꾸리는 하종강 님은 대학교 강의도 나가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삶이 한결 나아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조각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사람을 만나면서 지냅니다. 쉴 틈이 있을까요? 글쎄, 쉴 틈이 있다기보다는, 당신 하는 일을 놀이처럼 느끼며 더 다부지게 뛰고 있지 싶은데.

 지난해부터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에다가 《철들지 않는다는 것》에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내놓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 2006년 5월에 나왔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2007년 7월에 나왔으니 열넉 달 사이에 책 세 권입니다. 할 말이 많은 분일까요? 그동안 할 말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사셨던 분일까요?


..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진보적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태일기념관에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태일 열사의 기념관을 그 모양으로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진보운동의 수준이다. 그런 마당에 내가 낸 세금으로 박정희기념관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가슴이 막힌다. 전태일기념관을 나라돈으로 번듯하게 지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  (156쪽)


 우리들이 들을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만날 사람은 누구이며, 날마다 부대끼거나 스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명절날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무엇이며,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부모님하고, 딸아들하고, 사촌 오촌 육촌 칠촌 팔촌 들하고, 고향동무나 선후배하고,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안부인사만 나누고 돌아서곤 합니까. 고향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로 나누십니까. 지금 우리들이 마음을 기울이거나 함께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어 머리를 맞대십니까.


.. 내가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활동가가 아니라, 망설이면서 노동운동에 끼어들었다가 그 경험을 평생 동안 짐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활동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열등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의 활동 범위 밖에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인인 사람들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다 어렵게 만나도 자신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가까운 동료나 친척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감추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차마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  (337∼338쪽)


 하종강 님이 만나 도톰한 책 하나로 묶은 ‘우리 땅 노동자 이야기’들은, 한 분 한 분 곱씹고 되새겨 보면, 모두 우리 자신이요 이웃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이가, 우리 동무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이니까요.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정규직으로 걱정없이 지내면서 연봉 1∼2억을 너끈히 받으면서 몇 억짜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명절날 찾아뵐 분들한테 이 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드릴까 합니다. (4340.9.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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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슴 아픈 동감입니다~~~~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아갑니다. 일깨워주시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