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8.1.
《전태일 평전》
조영래 글, 돌베개, 1983.6.20.첫/1991.1.10.개정판
저잣마실을 다녀오면서 햇볕을 듬뿍 쬔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볕길을 골라서 다닌다. 여름에 볕길을 골라서 가면 한갓지다. 매미와 잠자리를 바라본다. 구름이 너울거리는 길을 살핀다. 늦여름이라는 이름을 곱씹는다. 《전태일 평전》을 모처럼 되읽었다. 어제오늘 되읽을 적에는 ‘서울’ 이야기가 유난하게 보인다. 지난날에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떠난 사람이 많다. “굳이 서울로 안 가”더라도 마을과 고을에서 품을 수 있었을 테지만, 예나 이제나 마을살림(지방자치)은 “마을을 살리는 스스로길”이 아니라 “마을에 떨어지는 돈을 뒤에서 나눠먹기” 같은 얼개라고 느낀다. 그래서 더더욱 서울로 가려고 하겠지. 이런 서울을 견딜 수 없는 작은이가 시골로 가려고 하지만, “그저 서울로 보내는 굴레”인 ‘오늘날 시골’에서는 더 버거울 만하다. 그나저나 2009년부터 《전태일 평전》은 ‘아름다운전태일’이라는 곳에서 나온다. 바람처럼 불처럼 떠난 전태일 님은 ‘아름다운-’을 앞에 붙인 이 이름이 멋쩍을 텐데? 왜 ‘바보전태일’ 같은 이름을 안 쓸까? ‘일하는전태일’이나 ‘어깨동무전태일’이나 ‘누구나전태일’처럼, 떠난넋이 나누려던 씨앗을 헤아리는 이름을 붙일 줄 모른다면, 전태일을 어떻게 읽힐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먹여살려야 할 처자식들과 팔다리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몰려드는 곳이 서울이다. 땅 잃은 농민들, 흙에 묻혀 아버지 어머니가 겪었던 괴로운 무지랭이의 삶을 이어받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 일자리가 없어서 멀쩡한 팔다리를 갖고도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는 실업자들, 그밖에도 살 길을 잃은 가지가지 사연의 사람들이 특권과 부귀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주워먹기 위하여 그들의 지친 발길을 최후의 종착지인 서울로 돌린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발걸음은 이렇게 해마다 서울로 향하였고, 그리하여 서울의 판자촌, 뒷골목, 이른바 우범지대는 때려부숴도 때려부숴도 더욱 늘어만 갔다. (37쪽)
(아름다운전태일, 2020.9.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