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9.13. 서울로
우리나라 모든 곳은 서울하고 잇는 길이 촘촘하다. 고흥은 코앞 장흥으로 가는 버스가 없고, 이웃 강진이나 해남이나 구례나 곡성으로 잇는 길도 없다. 그러나 서울로는 길이 잘 뻗고, 광주와 순천도 반듯하게 쳐다본다.
경남과 경북과 전북과 충남과 충북과 강원과 경기도 똑같다. 제주는 날개(비행기)가 허벌나다. 다들 서울바라기이고, 서울에서 시골과 작은고을로 내려보내는 얼개이다.
좋게 보면, 서울이 나라를 빛내는 모습이되, 곰곰이 보면 모든 곳을 서울이 빨아들이고 빨아먹는 길이다. 이 나라는 모두가 서울한테 종살이를 하면서 떠받치고 우러르는 굴레라고도 할 수 있다.
거창에서 하동으로 사뿐히 못 가면서, 문경에서 보은으로 가볍게 못 가면서, 장흥에서 고흥으로 이웃마실을 못 하면서, 이런 서울굴레인 뼈대에서 무슨 마을살림(지방자치)을 펼 수 있겠는가. 온나라가 서울바라기로 허덕인다.
나는 쓴다. 시골아이가 시골을 바라보기를 바라며 쓴다. 인천아이가 인천을 보고, 대구아이가 대구를 보고, 부산아이가 부산을 보고, 광주아이가 광주를 바고, 서울아이가 시골과 들숲바다와 이웃을 바라보기를 바라면서, 우리말꽃(국어사전)과 책과 글을 쓴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나를 보려고 쓴다. 나를 둘러싼 뭇이웃이 저마다 그분들 스스로 돌아보시기를 바라면서 쓴다.
서울로 곧장 이으면 수월할는지 모르나, 모든 서울길은 이웃마을과 이웃길을 싹둑 자른다. 서울로 그만 가거나 덜 가면서 이웃한테 갈 수 있어야 나도 너도 함께 살아난다. 서울로 그만 보내야 누구나 넉넉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