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7 비 2024.9.13.



  비가 쏟아진다. 쏟아지는 비는 ‘소낙비’라고 한다. 비가 부슬부슬 바닥을 적신다. ‘부슬비’이고, 부슬비보다 가늘다면 ‘보슬비’이다. 새벽에 맺는 이슬처럼 부드러이 드리우면 ‘이슬비’이다. 봄이면 ‘봄비’가 내리고, 겨울이면 ‘겨울비’가 내린다. 철에 따라 ‘여름비’하고 ‘가을비’가 있다. 우리를 둘러싼 들숲에서 자라나는 풀꽃나무는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푸르다. 사람이 아무리 따로 물을 준들, 빗물에 대지 못 한다. 그래서 들과 숲과 논과 밭을 촉촉히 적시면서 풀꽃나무를 살찌울 적에 ‘단비’라고 한다. 가뭄을 씻을 뿐 아니라 ‘마실물’을 달게 채우는 고마운 비라고 하겠다. 예부터 비가 올 적에는 여러 말씨로 나타낸다. 하늘에서 땅으로 오기에 ‘내리다’라 하고, 저 먼 곳에서 이리로 오니까 ‘오다’라 한다. 무엇보다도 들지기·숲지기·논지기·밭지기·흙지기는 으레 “비님이 오신다” 하고 노래했다.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빌기에 ‘비나리’이다. ‘빌다’가 밑동이기도 하되, ‘빌다’는 바로 ‘비’가 더 깊은 밑동이요, ‘비’라는 낱말에서 ‘빛’과 ‘빚’이 태어났고, ‘빌다’도 퍼졌다. 비가 내릴 적에는 줄줄이 한참 잇는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결을 보면서 ‘내내’나 ‘내리’나 ‘내처’ 같은 낱말도 태어났다. 비가 온누리를 말끔하게 씻는다고 느껴서 ‘비(빗자루)’에 ‘비질’이라는 살림을 지었고, 빗줄기와 빗살을 고스란히 따서 머리카락을 고르는 ‘빗(머리빗)’이라는 살림도 지었다. 바닷물이 아지랑이로 하늘로 올라 구름을 이루고서 내리는 빗물은 ‘민물’이다. 냇물도 샘물도 모두 빗물이다. 우리는 빗물을 마시며 몸을 살리는 얼거리인데, 어느새 그만 ‘게릴라성 폭우’나 ‘물폭탄’처럼 비를 미워하는 말씨가 불거진다. 비가 잔뜩 내리면 ‘함박비’에 ‘벼락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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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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