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01.1.17. 온책온빛



  둘레에서는 흔히 “사람마다 빛깔이 다 다르다” 하고 말을 한다. 어렵게 꼬아서 ‘백인백색·백양백색·십인십색’이나 ‘개성적’이라고 이르기도 한다. 이런 말을 옆에서 조용히 들으며 혼자 곱씹어 본다. ‘사람마다 빛깔이 다 다르다고 말은 잘 하면서, 내가 차림옷(양복)이 아닌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으면 왜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혀를 끌끌 차지? 사람마다 빛깔이 다 다르다고 읊지만, 정작 그분들이 읽는 책은 다 같잖아? 신문에서 알려주지 않는 책은 살 엄두도 안 내고, 방송에서 알려주는 책은 우르르 몰리잖아?’


  한자말은 ‘백(百)’이지만, 우리말은 ‘온’이다. ‘백인백색·백양백색’을 ‘온빛’이나 ‘온사람’으로 풀어 본다. 아니, 우리 삶자락을 헤아려 ‘온빛·온길·온사람·온꽃·온풀’로 새롭게 여미어 본다.


  오롯하고 옹글게 온누리를 이루는 다 다른 빛깔이기에 온빛이요, ‘온책’을 읽는 온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눈치를 볼 일이 없이 속빛을 바라볼 줄 아는 온숨이요 온넋이며 온얼이다.


  우리가 저마다 온하루라면, 쳇바퀴도 굴레도 수렁도 톱니바퀴도 아닌, 사람답게 사랑을 하리라. 우리가 언제나 온하루를 잊거나 잃으면, 그저 쳇바퀴에 굴레에 수렁에 톱니바퀴이리라. 어느 한 가지 길만 으뜸일 수 없다. 다 다른 모든 길이 우리 앞에 환하고 밝다.


  온누리에 빛나는 책이 고작 한두 가지뿐이라면, 책은 그냥 한 자락만 읽어도 될 테지. 저마다 빛나는 다 다른 사람이기에, 이 삶에 곁에 둘 책은 한둘이 아닌 ‘온책(100가지)’일 뿐 아니라, ‘즈믄책(1000가지)’이고, ‘골책(10000가지)’이자, ‘잘책(1억 가지)’이리라.


  온누리 모든 책은 다 다르기에 아름답다. 비슷비슷한 줄거리라면 따분하다. 잘 팔리기만 한다면 덧없다. 높여야 할 책이 없고, 낮추거나 깔볼 책이 없다. 자랑하거나 우쭐대는 책은 창피하다. 글바치가 꾸준하게 새글과 새책을 선보이지 못 한다면 부끄럽다. 스스로 온님이라면, 날마다 새글을 기쁜 웃음꽃으로 여밀 테고, 스스로 온살림이라면 해마다 새책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랑으로 엮을 테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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