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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 ㅣ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9.6.
노래책시렁 447
《니들의 시간》
김해자
창비
2023.11.24.
소쩍새가 둘 있으면, 둘이 내는 노랫가락은 두 가지입니다. 꾀꼬리가 셋 있으면, 셋이 내는 소릿가락은 세 가지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넷 있으면, 넷이 내는 노래마디는 네 가지입니다. 온누리에 들숲바다가 있으면 온누리 갈래만큼 다 다른 들숲바다입니다. 이 나라에 마을이 있으면 모든 마을마다 다른 빛과 터와 삶입니다. 《니들의 시간》을 읽으며 무엇이 다르려나 헤아리지만 썩 종잡지 못 합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려 놓으면,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구나 싶어요. 적잖은 글지기는 애써 다른 티를 내려고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를 뒤섞는데, ‘시집’으로 나온 꾸러미에 깃드는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어떤 하루를 살기에 글결이 닮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사람들 옷차림부터 다 닮고, 사는 집도 다 닮고, 읽는 다른 책도 다 닮습니다. 담으려고 닮는다기보다, 닮아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닳는다고 느낍니다. 다가가려고 담은 몸짓이 아닐 테니까, 담벼락처럼 높다랗게 쌓아서 가로막기도 합니다. 소쩍새처럼 그저 노래하면 됩니다. 꾀꼬리처럼 마냥 노래하면 됩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언제나 노래하면 됩니다. 새를 곁에 놓는 삶자리라면, 입과 손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저절로 노래입니다.
ㅅㄴㄹ
가출했다 잡혀 온 내 손모가지 꽉 붙들고 / 엄마는 딱 한마디 했다 / 집에 가자이, / 아무 말 못하고 엄마 손에 끌려갔다 / 목표역 앞이었다 // 머를 좀 잘못 알았는갑소, / 잘 좀 알아보쇼이, / 우리 애기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랑께요, / 경찰서 안이었다 (모국어/18쪽)
동인천 중국인 거리에서 한잔하고 / 하인천 골목 우럭구이집에서 한담 나누는데 / 근처 율목동 사는 최원식 선생께서 / 인천에서 활동하던 조직 이름이 뭐였냐 물으시길래 / 우리는 이름이 없었다고 말하자 / 그거 재밌다 이름 없는 조직이라니, / 소년처럼 웃으시며 / 야아! 이름이 없다니 그거 대단하다 대단해, /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그런 시는 왜 안 쓰냐, 한 말씀 보태시는데 (이름 없는 조직/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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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
몸빼와 꽃무늬 스웨터
→ 일바지와 꽃무늬 털옷
→ 꽃바지와 꽃무늬 털옷
10
논바닥 위로 쌓여가는 눈 위에 눈
→ 논바닥에 쌓여가는 눈에 눈
11
울지 못한 울음 그의 등짝이 젖고 있었다
→ 울지 못한 그는 등짝이 젖는다
→ 울지 못한 채 등짝이 젖어든다
13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 굵모래와 진흙과 돌 사이
→ 굵은모래 진흙 잔돌 사이
16쪽
경찰서 앞이었다
→ 살핌터 앞이었다
→ 지킴터 앞이었다
18쪽
탁발 순례 마치고 큰오빠 집으로 간 지 한달 만에 영영 가셨다
→ 동냥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끝내 가셨다
→ 모심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그저 가셨다
→ 꽃손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내처 가셨다
→ 섬김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아주 가셨다
19쪽
집 우(宇) 집 주(宙)
→ 집과 집
→ 온과 누리
19
아직도 근무 중인가 독서대에 세워진 책을 투과하여 벽을 째려보는 것 같다
→ 아직도 일하나 읽기판에 세운 책을 비추어 담을 째려보는 듯하다
→ 아직도 일하는가 책판에 세운 책을 꿰뚫어 벼락을 째려보는 듯하다
22
딸은 시방 면벽(面壁) 수행 중
→ 딸은 막 담바라기
→ 딸은 이제 마주담
22쪽
오리들의 창가(唱歌) 허공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노래 하늘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가락 높이 두드려대는 북소리
25쪽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점잖으신 어른이 활짝 웃는다
→ 점잖으신 분이 껄껄댄다
26쪽
중구난방 회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들끓며 나누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흩날리며 같이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춤추는 모임터가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오락가락 만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42쪽
무력한 자들의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힘없는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기운잃은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46
하얀 어둠 속에서 잊어버린 말들이 방문했다
→ 하얗게 어두운데 잊어버린 말이 찾아온다
→ 하얀밤에 잊어버린 말이 다가온다
51
다시 시작해도
→ 다시 해도
→ 다시 가도
53
듣고도 모른 척한 말들이
→ 듣고도 모른 척한 말이
56
깨진 돌의 말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깨진 돌이 하는 말로 그대를 모십니다
→ 깨진 돌이 말하니 너를 부른다
58
페이지만 달라질 뿐
→ 쪽만 다를 뿐
86
인간은 어디까지 자율적일 수 있을까요
→ 사람은 어디까지 스스로 할까요
→ 우리는 어디까지 마음대로일까요
86
천개의 언덕 위에서
→ 즈믄 언덕에서
9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