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4 배우다 2024.8.31.
누구나 어머니 ‘배’를 포근하면서 아늑한 품으로 삼으면서 천천히 자란다. 몇몇 숨붙이는 암수가 씨만 뿌려서 알을 이루고 태어난다고 여기지만, 암수가 품은 씨앗도 ‘배’에 깃든다. ‘배’라는 곳에서 숨결을 배고, 이렇게 밴 숨결이 밖으로 깨어나고 나면, 이때부터 저마다 ‘배우’는 길로 나선다. 마치 너른 바다를 가르는 ‘배’처럼 나아간다. 갖은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을 거치더라도 속으로 든든히 배우고 받아들이고 삭이면서 반짝이는 슬기로 빛내게 마련이다. 배나무가 맺는 ‘배’라는 열매를 본다. 두툼하고 단단해 보이는 껍질이지만, 속은 더없이 하얗고 밝고 맑으면서 시원한데다가 달다. 우리가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길이란, 늘 새롭게 배우면서 바다 같고 바람 같은 숨빛을 맞아들이는 나날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어쩐지 요사이는 ‘배우’는 사람이 드물다. 일본말씨로 ‘공부(工夫)’를 할 뿐이요, ‘학습(學習)·학업(學業)·학문(學問)’이라고들 한다. 배워야 배게(배어들게) 마련이고, 배운 여러 살림을 차근차근 가다듬고 추스르고 다듬고 손보면서 ‘익히’ 수 있다. 여러 밥살림을 익히듯, 배움거리도 익힐 적에 비로소 어질게 스며서 슬기라는 빛으로 거듭난다. 배울 줄 알기에 가르치고, 가르치다 보면 새삼스레 배운다. 어른이라면 아이를 가르치면서 아이한테서 배운다. 아이라면 어른한테서 배우는 사이에 저절로 가르친다. 아이어른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림길을 익힌다. 어우러지는 ‘가배(가르치다·배우다)’를 이루기에 하루를 일구면서 새빛을 익힌다. 셈겨룸(숫자전쟁·입시지옥)에 사로잡히는 굴레는 배움길하고 멀기에 익힘살림하고도 멀다. ‘배우다 = 배도록 하다 = 버릇 = 겉’이다. ‘익히다 = 익도록 하다 = 일 = 살림’이다. 한 걸음씩 내딛고 모든 하루를 돌아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