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9.1. 삶장난 말장난 글장난
꽤 이름있다는 어느 분이 쓴 글을 읽었다. 그분은 “삶은 어떠어떠해야 한다.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만들어낼 필요가 없습니다.”처럼 앞말을 하고서 “현재의 나로 있어 보면 알게 됩니다.”처럼 뒷말을 하는데, 그저 두동지다. 이른바 ‘모순’이다. “내가 나로서 여기에 있기”란, “내가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를 생각하기”일 텐데, 마치 둘이 다르거나 틀린 길인 듯 말을 한다면, 이웃(독자)을 속이는 허울이로구나 싶다.
더욱이 그분은 “쉬우면서도 드문 일이고, 드물지만 쉬운 일입니다.” 같은 말도 보태는데, 이 대목도 허울스럽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삶’이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모두 겪고 스치고 마주하고 누리고 찾고 헤매면서 ‘어떠어떠하게’ “스스로 지어가는 나날”이다.
우리는 먼저, “삶은 어떠해야 할까?” 하고 길(목표·목적)을 세울 노릇이다. 다음으로, “나는 무엇(어떤 사람)으로 서야 할까?”를 생각할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면서 삶이라는 길을 걷는가?”를 짚고 새기고 돌아볼 노릇이다. 이렇게 석걸음을 내딛을 적에 “내 넋이 입은 옷인 몸으로 이 별에서 어떤 하루를 짓는 나다운 사람이자 삶이자 살림이자 사랑으로 나아가는 숲”인지 비로소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스스로 무엇(어떤 사람·숨결·넋)으로 서는 오늘인지 그리지 않는다면, 나는 늘 헤맬 뿐 아니라, 남이 하는 말에 휩쓸리거나 끄달린다. 나는 바로 ‘나짓기’부터 할 일이다. 다만, ‘나짓기’를 해야 할 뿐, ‘나를 만들기’를 하지는 않을 일이다. 왜냐하면 ‘만들기 = 똑같이 찍어내기’이니, “나를 남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내듯 ‘만들기’를 해버리는 굴레질”이 아닌, 나를 나로서 내가 스스로 바라보면서 꿈을 그리고 사랑을 펴는 ‘나짓기’로 나설 일이다.
글 한 줄로 글장난을 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말 한 마디로 말장난을 하면서 돈과 이름과 힘을 쥐는 이도 꽤 늘었다. 글장난과 말장난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무리는 그들 스스로 삶장난을 치는 셈이다. 얼핏 보면 그들은 떵떵거릴 뿐 아니라, 서울에서 50억이니 100억이니 200억이니 하는 맞돈(현금)을 척척 내면서 큰채를 장만하곤 하는데, 이만 한 돈으로 들숲메를 장만해서 들빛과 숲빛과 멧빛으로 고즈넉이 물들려고 하는 이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장난질이 아닌 삶짓기를 그리는 이라면, 200억이 아닌 10억이나 1억을 벌었어도 진작에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조용히 ‘보금숲(보금자리 + 숲)’을 짓겠지. 글쓰기와 말하기로 돈을 잘 벌고 이름을 날리는 이들 가운데 아직도 서울에 눌러앉기만 한다면, 이들은 하나같이 장난꾼일 뿐이다. 푸른길(환경운동)을 편다면서 정작 시골살림을 안 짓고 서울살이만 한다면, 말과 삶이란 늘 엇갈리면서 장난질에서 쳇바퀴를 치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