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원미용 (2023.8.19.)

― 부천 〈용서점〉



  지난날 사람들은 보따리(보퉁이)로 싸서 걸어다녔습니다. 얼핏 보면 가난하다고 여기던, 수수하고 작은 집안에서 나고자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똑같이 먼 멧골을 보따리(보퉁이)에 싸서 넘어다니곤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주시경 님이 끝까지 ‘일본 가방’을 안 쓰고서 보따리(보퉁이)에 책을 싸서 걸어다니기만 했기에 ‘주보따리(주보퉁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요새는 보따리도 가방조차도 없이 다니는 분이 엄청나게 늘어요. 보따리나 가방을 짊어지거나 쥐거나 멘 사람을 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안 걸어다니고, 안 짊어지곤 합니다. 스스로 안 걷기에 이웃도 마을도 나도 하늘도 땅도 다 못 보거나 안 보면서 잊고 잃어갈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벼슬을 얻거나 돈·이름·힘을 거머쥘수록 안 걸으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가마’를 탔다면, 요새는 쇳덩이(자가용)한테 넋을 파는 굴레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일 텐데, 가마·수레·쇳덩이에 몸을 실으면서, 그만 다 다른 빛을 잊거나 잃는 듯합니다. 스스로 새길·새삶·새빛(생각)을 짓는 하루를 등지고 말아요.


  부천 원미동 〈용서점〉에 살그마니 깃듭니다. 원미동에 깃든 용지기일 테니 ‘원미용’입니다. ‘용’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분은 다 다르게 ‘용’을 읽을 텐데, 저는 ‘용하다·용쓰다’라는 우리말을 떠올립니다. 바닥에 깔아서 따뜻하게 삼는 천을 ‘요’라고 합니다. 밑자락을 이루면서 한꺼번에 내는 커다란 힘이기에 ‘용’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얼마 앞서 어느 고장 어느 새뜸(뉴스레터)에 글을 한 자락 보냈더니 마구잡이로 가위질을 하더군요. 그들은 왜 그럴까요? 우리말결을 알지 못 하면서 가위를 쥔들, 스스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말결을 모르기에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우리말빛을 안다면, 스스로 살림말을 짓고 가꿉니다. ‘살림말 = 집말 = 마을말 = 사투리’인 얼개입니다. 사투리를 쓸 줄 아는 눈빛과 마음과 손길일 적에, 손수 보금자리를 돌보면서 환하게 빛나게 마련입니다.


  아이는 여린 몸으로 태어나서 온갖 소꿉놀이를 해보는 동안 천천히 자랍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아프거나 앓는다면, 새롭게 자랄 뿐 아니라 한결 튼튼히 일어서려는 배움길에 선다는 뜻입니다. 아픔도 앓이도 나쁜 일이 아닌, 그저 배움꽃입니다.


  빨리 나으려고 하니까 덧납니다.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니까 망가지고 무너집니다. 천천히 돌보고 쓰다듬고 풀고 쉴 적에 말끔히 털고 씻고 나아요. 누구나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나, 첫걸음부터 떼기에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습니다.


ㅅㄴㄹ


《드라마의 말들》(오수경, 유유, 2022.7.4.)

《우리는 올록볼록해》(이지수, 마음산책, 2023.7.5.)

《티벳, 나의 조국이여》(달라이 라마/강건기 옮김, 정신세계사, 1988.2.8.)

《한글의 시대를 열다》(정재환, 경인문화사, 2013.2.22.)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이광호, 난다, 2014.6.10.)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리처드 파인만/박병철 옮김, 승산, 2003.1.6.첫/2003.5.26.6벌)

《고종석의 유럽통신》(고종석, 문학동네,1995.8.10.)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문학동네, 2014.5.20.첫/2015.7.22.8벌)

《百濟 百濟人 百濟文化》(박종숙, 지문사, 1988.8.10.첫/1992.4.10.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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