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일하는 책
일하러 가면, 일할 곳 둘레에 책집이 있는지부터 살핀다. 일하기 앞서하고 일마치고서 꼬박꼬박 책집마실을 한다.
바깥일을 받아들일 적에는 바깥일보다는 바깥일 핑계로 책집마실을 누리려는 속뜻이다. 그러나 책집이 없거나 사라진 고장이나 마을이 수두룩하다.
책집이 사라지는 곳에서는 포근히 나누는 손길과 눈길이 나란히 사라진다고 느낀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고 높다랗게 솟는 아파트가 넘실대는 곳에 살림(문화)이 있는가? 살림 잊은 죽음(부동산)만 있지 않은가?
2024년 광주책집에서 1969년 부산책집 자취를 보았다. 두 고장을 오가며 어느 책을 읽은 분은 어떤 발걸음으로 이웃나라 책을 폈을까?
2024년 나는 2079년 뒷사람한테 어떤 이야기와 넋을 글씨와 말씨로 물려줄까? 오늘로 온 어제를 읽으면서, 오늘이 나아갈 모레를 그린다. 책으로 채운 등짐으로도 모자라서, 가슴팍에 책더미를 하나 안는다.
땡볕이 반갑다. 이 한여름에 나락이 잘 익고, 포도가 여물고, 감알이 굵고, 온낟알과 온열매가 기쁘게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를 느낀다.
뙤약볕 내리쪼이는 하얀길을 성큼성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