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산하작은아이들 71
임순옥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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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4.7.16.

맑은책시렁 330


《꽃샘추위》

 임순옥 글

 이상권 그림

 산하

 2022.11.25.



  《꽃샘추위》(임순옥, 산하, 2022)는 두 아이가 맞닿다가 맞서면서 동무로 어울리는 길을 줄거리로 삼는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가 얼핏설핏 나오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거나 바라보기보다는 으레 어버이 말이나 손길에 이끌립니다.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 가운데 몇이나 스스로 길을 찾아나설까요? 어쩌면 거의 몽땅 어버이 손에 이끌려서 배움수렁(학교·학원 쳇바퀴)에 갇힌 나날이지 싶습니다.


  요사이는 걸어다니는 아이가 드뭅니다. 걷고 싶더라도 골목이며 거님길을 온통 쇳덩이(자동차)가 차지합니다. 조금 걸을라치면 앞옆뒤에서 쇳덩이가 빵빵거리면서 비키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나마 큰고장 아이들은 조금 걸을는지 모르나, 시골 아이들은 노랑이(학교버스)가 곧장 실어나르고, 푸른배움터는 으레 어울집(기숙사)에서 지냅니다.


  걷지 않으니 놀지 않고, 놀지 않으니 노래하지 않습니다. 노래하지 않으니 마음을 넉넉히 가꾸지 않고, 마음을 넉넉히 안 가꾸니 누리놀이(인터넷게임)하고 누리그림(유투브)에 고개를 처박습니다.


  서울이건 시골이건, 아직 잿더미로 올리지 않아서 조금 남은 골목길 한켠은 아이들이 마구 태우다가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합니다. 《꽃샘추위》를 돌아봅니다.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서 동무를 빼앗았을 텐데, 서로 어울려 놀면서 노래하는 하루를 가로챘을 텐데, 아이 스스로 걷고 달리고 웃고 우는 삶을 짓눌렀을 텐데, ‘아이들이 서로 동무로 사귀기 어렵다’는 줄거리만 건드리려고 하면 자칫 길을 잃거나 잊으면서 헤매는 얼거리로 치닫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마음(감정)을 또렷하게 밝혀야 한다는 얘기가 곧잘 흐릅니다만, 마음을 쌓거나 다지거나 이룰 터전부터 없거나 빼앗긴 오늘날 터전이라는 대목부터 짚지 않으면, 줄거리만으로는 제대로 어린이한테 다가서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또한 얄궂은 터전을 어린이 스스로 하나씩 바꾸어 가면서 뛰놀고 노래하는 길을 조그맣게 씨앗을 심듯 들려주는 얼거리를 바라보지 않을 적에도, ‘동무 사귀기’ 줄거리를 짜서 맞추려고 하다가 오히려 뒤틀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서울과 부산과 온나라가 잿더미(아파트단지)요, 어린이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뛰놀 자리가 사라졌다고 여기더라도, 어린이문학은 놀이 이야기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놀지 않으면서 동무일 수 없습니다. 놀며 노래하지 않는데 어떻게 동무일 수 있겠습니까. 어린이한테 문학(동화)을 베풀려 하지 말고, 어린이하고 먼저 실컷 뛰놀고 나서 글을 쓸 일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세은이는 공부를 조금만 해도 성적이 잘 나오고, 세은이 엄마는 늘 집에서 세은이를 도와준다. 세은이네 집은 방학에 여행도 자주 간다. 나는 세은이보다 성적이 잘 나온 적이 없다.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고, 비 오는 날 학교에 우산을 들고 올 수도 없다. 친구랑 놀다 오라고 차를 태워 주지도 못한다. (26쪽)


“집에 갈래.” 우영이가 자전거를 빼서 옆으로 돌렸다. “야, 미안하다고. 진짜!” 선재가 소리를 높였다. “비싼 자전거 자랑하냐?” 우영이도 목젖까지 올라온 말을 쏟아냈다. (61쪽)


신준호가 은행을 밟고 허둥대던 모습이 떠올라 또 웃음이 나왔다. “이 동네에 우리 반 남자애가 살아. 할머니랑 재미있게 지내더라.” “부모님은?” “몰라. 그 애가 춤을 잘 춰.” “한창 공부할 때 춤을 추면 어쩌니?” “……” (104쪽)


+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이사 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 떠난다기보다 떠나는 놀이를 하는 듯했다

→ 옮겨 가기보다 옮기는 놀이를 하는구나 싶다

7쪽


시소가 수평이 된 게 재미있었다

→ 널방아가 똑바로라 재미있다

→ 널타기가 나란해서 재미있다

17쪽


두 아이의 눈빛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 두 아이 눈빛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 두 아이는 눈이 잔잔하게 빛난다

72쪽


어두워져 오는 하늘에 노랑 하트들이 만발해 있었다

→ 어두워 오는 하늘에 노랑 사랑잎이 가득하다

104쪽


다른 존재들이 만나 친구가 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 다른 숨결이 만나 동무가 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 다른 넋이 만나 동무가 되기란 쉽지만은 않은 듯싶습니다

11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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