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3.2.20. 보행자 지옥
서울은 시끄럽다. 부산과 인천도 시끄럽다. 광주와 순천도 시끄럽다. 대전과 포항도 시끄럽다. 골목으로 접어들어서 거닐면 덜 시끄럽다만, 어느새 쇳덩이가 앞뒤로 들어와서 빵빵댄다. 사람이 느긋이 걷기도 모자란 골목 어디나 한켠에 다른 쇳덩이가 한참 서기에, 걷는 사람은 이쪽 쇳덩이한테서 비키고 저쪽 쇳덩이한테서 비켜야 한다. 그렇지만 쇳덩이를 모는 이들은 “좁은 골목길이 가뜩이나 더 좁은 까닭은, 걷는 사람 때문이 아닌, ‘무단주정차를 한 다른 쇳덩이’” 때문이지만, 언제나 걷는 사람한테 빵빵대면서 담벼락에 바싹 붙으라고 윽박지른다.
서울이나 큰고장에 바깥일을 보러 다녀오면 힘을 쪽 뺀다. 우리나라는 서울도 시골도 ‘쇳덩이나라(자동차 친화정책)’인 터라, 쇳덩이를 몰지 않으면서 걷는 사람한테는 끔찍한 불수렁이다. 거님길이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한지 모르는 분이 많다. 젊은 엄마가 억지로 쇳덩이를 장만해서 아기를 쇳덩이에 실어서 부릉부릉 모는 까닭을 알 만하다. 우리나라 모든 거님길은 아기수레를 밀면서 다니기에는 대단히 괴롭고 벅차며 아슬아슬하거든.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길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걷는수렁(보행자 지옥)’이다. 할매할배가 남은 오래골목(구도심)을 보면, 마을 할매할배가 날마다 아침낮저녁으로 틈틈이 비질을 한다. 오래골목을 거닐면 길바닥도 정갈하고 고즈넉할 뿐 아니라, 마을 할매할배가 가꾸는 풀꽃나무에 새가 내려앉아서 노래하고, 벌나비가 춤추며 풀벌레가 노래하고, 이따금 개구리까지 노래를 보태니, 서울마실·큰고장마실을 할 적에 몸마음을 쉴 수 있다.
이와 달리 큰길을 걸어야 할 적에는 길바닥이 어마어마하게 지저분하고 돌과 못과 깨진 병조각이 춤출 뿐 아니라, 곤드레꾼이 게운 속엣것이 곳곳에 있고, 길담배를 태운 이들이 버린 꽁초가 널렸는데, 길장사를 하는 분도 많고, 가게마다 길에 살림을 잔뜩 내놓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서울 큰길’을 걸어서 지나야 할 적에는 귀도 눈도 몸도 마음도 다 아프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고샅과 골목은 ‘아이 차지’였다. 아이들이 고샅과 골목에서 맨발로 뛰놀 수 있어야 마을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가면 갈수록 서울과 큰고장과 시골읍내까지, 걸어다니는 어린이를 아예 볼 수 없다고까지 느낀다. 다만, 우리나라 여러 고을 가운데 부산은 아직 “걷는 어린이”가 꽤 있다. “걷는 어린이”를 보기 어려운 고을이나 마을이라면, “어린이도 어른도 살기 어려운 불수렁(지옥)”이라는 뜻인데, 이 얼거리를 알아보는 이웃이 늘어나기를 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