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4.5.19.

오늘말. 풍기다


어릴 적에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우리말은 ‘얘기’이고, 한자말은 ‘대화’이겠거니 여겼습니다. 삶을 잇고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에, 우리가 살림하는 이곳에서 스스로 이름을 붙인 모든 낱말에는 저마다 뜻이 새롭게 흐르는 줄 천천히 알아보았습니다. 혼자 터뜨리는 소리는 ‘말’이요, 마주하는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일 적에 비로소 ‘이야기’이더군요. 마음을 말 한 마디로 자아올려서 나눕니다. 두런두런 섞는 말에는 스스로 지은 삶내음이 풍깁니다. 말소리는 귀로 듣는다지만, 살갗이며 코에 눈으로도 맡습니다. 냄새는 코로 느낀다지만, 눈과 손발과 머리카락으로도 알아차립니다. 혼자 버거울 적에는 모둠글로 돕습니다. 같이쓰기를 하면서 어깨가 가벼워요. 뜻이 만나면서 길을 트고, 꿈빛으로 모이면서 둥글게 어울립니다. 슥슥 이름을 적어 봅니다. 너는 이름꽃으로, 나는 이름빛으로 삭삭 담은 두레글을 폅니다. 대접에 냇물을 담아서 싱그럽게 마시고, 꽃무늬를 새긴 그릇에 수박 한 조각을 놓습니다. 모든 삶은 여기부터 이음길입니다. 어느 살림이건 손으로 지어요. 이웃을 사귀려고 두 다리로 천천히 마실합니다.


ㅅㄴㄹ


이야기·얘기·나누다·주고받다·섞다·잇다·이어가다·이음길·이음목·어울리다·사귀다·마주하다·만나다 ←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무늬·그림무늬·글무늬·꽃무늬·날무늬·날짜무늬·덧무늬·넣다·담다·새기다·적다·찍다·이름·이름글·이름꽃·이름빛·이름넣기·이름씨·이름적기 ← 소인(消印), 스탬프(stamp)


내·내음·냄새·맡다·풍기다·자아내다·자아올리다·잣다·코 ← 후각(嗅覺)


대접글·대접글씨·둥근글·둥근글씨·모둠글·두레글·같이쓰기·함께쓰기 ← 사발통문(沙鉢通文)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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