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나리꽃 (2018.5.13.)
― 전남 순천 〈책방 심다〉
봄은 어디에서나 봄입니다. 닷달(오월)은 언제나 닷달입니다. 아주 오래도록 누구한테나 봄과 닷달은 고스란히 눈부신 빛살이었습니다. 맨몸으로 일하고,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살림하는 사람으로서는, 봄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닷달살림을 차근차근 여밉니다.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든 이듬해 닷달에 하얗게 올라와서 모락모락 번지는 흰꽃을 보고는 “너 참 곱구나.” 하고 느꼈으나 무슨 꽃인지 몰랐습니다. 2012년에 고흥으로 마실을 온 어머니한테 여쭈었더니 “어머, 넌 이 꽃도 모르니? 찔레잖아?” 하시더군요.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동안 찔레꽃을 본 일이 있는가 하고 갸우뚱해 보았습니다. 2007년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날마다 한참 골목마실을 여러 해 했으나 찔레나무는 못 봤지 싶습니다.
인천이건 부산이건 서울이건, 골목을 넓게 이룬 마을마다 골목이웃이 골목밭을 가꾸게 마련인데, 숱한 풀꽃나무 가운데 ‘찔레’만큼은 없지 싶습니다. 꽃찔레(장미)는 흔해도, 수수한 찔레나무를 눈여겨보거나 사랑하는 일은 드물어요. 찔레덩굴만큼은 큰고장에 남지 않은 채 시골에서만 고즈넉이 자라지 싶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이 찔레는 거의 사라질 판입니다. 부채나무(미선나무) 걱정만 할 때가 아닙니다. 들살림과 멧살림을 이루는 숲정이가 사라지는걸요.
순천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싹튼 〈책방 심다〉는 이제껏 순천내기나 순천시에서 안 하거나 안 보던 곳을 눈여겨보는 발걸음입니다. 순천에서 나고자랐기에 순천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곳을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아이 곁에서 살림을 짓는 마음”일 적에 마을사랑이 샘솟습니다.
끝봄에 살랑이는 새길을 헤아립니다. 요새는 봄에도 함박비가 유난히 잦습니다. 함박비가 지나간 하늘은 남다르게 새파랗습니다. 봄이면 꽃송이가 큼지막한 나무도 눈에 뜨이는데, 멧꽃도 꽃나무도 ‘나리꽃’에 ‘나리나무’라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 땅에서는 ‘나리’라는 이름이 맞갖습니다.
살림하는 손길이란, 사랑하려는 손길입니다. 글을 쓰거나 읽는 눈길이란, 사랑하려는 눈길입니다. 우리말은 토씨와 말끝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사뭇 다릅니다. 살림살이나 들숲바다도 작은 손길이며 작은 풀꽃이 모여서 확 다르게 번집니다.
마을책집이 살아갈 길이란, ‘새로 나온 책’을 잘 갖추는 길 못지않게 ‘이미 나온 책’을 눈여겨보면서 두루 알리는 길이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두고두고 뿌리내릴 마을살림처럼, 두고두고 오래 건사할 책을 품어야 마을책집입니다.
ㅅㄴ
《나는 봉지》(노인경, 웅진주니어, 2017.6.20.)
《너에게만 알려줄게》(피터 레이놀즈/서정민 옮김, 문학동네, 2017.8.21.)
《고양이 수목원》(윤의진, 물고기이발관, 2017.9.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