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2024.4.20.


슬럼프 작가 : 둘레에서 나한테 묻는 말을 곱씹노라면 온통 배울거리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안 추우셔요?”인데, “마음이 추우면 춥고, 마음이 따뜻하면 따듯합니다.” 하고 대꾸한다. 참말이다. 거짓말일 수 없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따뜻하게 다스리면 추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추위’가 왜 우리 곁에 있는지 마음빛을 밝혀서 깨달을 만하다. 나는 으레 등짐을 영차 어깨에 얹고서 오래오래 걷는다. 그래서 둘레에서는 또 “안 무거우셔요? 안 힘들어요?” 하고 묻는다. 언제나처럼 빙긋 웃고서 “왜 스스로 몸한테 ‘난 힘들어’ 하는 말을 굳이 욱여넣으려고 하나요? 등짐이 무게로 얼마쯤일까 하고 헤아리기는 하지만, ‘무겁다’거나 ‘힘들다’고 여긴 날은 하루조차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짊어지고서 걸어가자고 여기기에, 이렇게 짊어지고 걸으면서 즐겁게 살아갑니다.” 하고 속삭인다. 이리하여 적잖은 분들은 새삼 묻는다. “슬럼프 없어요? 어떻게 날마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어요?” “왜 ‘수렁(슬럼프)’에 잠겨야 하나요? 아기를 낳아서 돌볼 적에 ‘이 아이 못 돌보겠어!’ 하고 내팽개치는 일은 하루는커녕 눈꼽만큼도 있을 턱이 없어요. ‘이 사랑스러운 아이하고 언제나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어야지!’ 하는 마음만 있어요. 그래서 날마다 ‘쓸 글’을 쓸 뿐이고, 짬이 더 없으면 그만 쓰고서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하고, 아이들하고 얘기하거나 놀고,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바깥일을 보고, 풀꽃나무랑 얘기하고, 새가 베푸는 노래를 듣고, 풀벌레하고 개구리가 벌이는 노래잔치에 귀를 기울여요. ‘슬럼프 작가’란 거짓말일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슬럼프가 있다’고 한다면, 그분은 여태까지 ‘글쓰기 아닌 글시늉’으로 사람들을 속였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이를 돌보다가 먼저 까무룩 곯아떨어지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저희끼리 신나게 놀고서 ‘곯아떨어진 아버지 곁’으로 와서 잘 자더군요. 우리가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꿈을 그리고 사랑을 그리면, 누구나 날마다 실컷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살림을 아름답게 여기고, 온하루를 반짝반짝 빛내게 마련입니다.” 글을 한창 쓰다가 못 쓴다고 하는 분이 있다면, 글에 앞서 스스로 삶그림을 마음에 안 담았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또는 글살림 아닌 집살림을 오롯이 품으면서 고즈넉하게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으리라. 2024.4.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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