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3
미즈나기 토리 지음, 심이슬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1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4.5.
내가 바라보는 곳에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3》
미즈나기 토리
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1.30.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3》(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을 펴면, 어느 곳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걸어가거나 달려갈까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첫자락에서는 아직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들려주고, 두자락에서는 천천히 다잡는 마음을 들려준다면, 석자락에서는 이제부터 내 나름대로 바라보자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2024년 1월에 나온 넉자락에서는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는 마음을 들려주고요.
마음은 한결같을 수 있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마음은 단단할 수 있고, 여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마음이지만 늘 너울거립니다. 기쁘다가 슬프고, 섭섭하다가 반갑고, 가라앉다가 일어서고, 처지다가 환합니다. 때로는 내내 구슬프고, 내도록 고단하고, 내처 눈물겨울 수 있어요.
하루씩 이야기를 쌓는 마음입니다. 잘 하건 못 하건 모두 마음에 담습니다. 하루하루 이야기가 흐르는 마음입니다. 이 길을 가건 저 길을 가건 모조리 마음으로 흘러듭니다.
간이 맞아 느긋이 누릴 국을 끓이는 날이 있습니다. 싱겁거나 짜서 뒷통수를 긁적이는 날이 있습니다. 국도 밥도 안 하고서 멍하거나 바쁜 날이 있고, 밖에서 사먹는 날이 있어요.
그림꽃 이름처럼 “기쁨은 먹고자고 기다리는” 동안 문득 스며듭니다. 맛밥을 먹어도 기쁘고, 맛밥이 아니어도 기쁩니다. 굶어도 기쁘고, 잔치여도 기쁩니다. 마음 가득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활짝 웃는 날이면 어느 밥차림이어도 기쁘게 마련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않는 날이라면, 둘레에서 아무리 북돋우거나 기뻐해 주더라도 밍밍하거나 고개를 돌려요.
첫봄인 3월을 지나 한봄인 4월에 이르면 못이나 둠벙이나 논이나 도랑에 올챙이가 꼬물거립니다. 3월이 저물 즈음에는 이 나라로 돌아온 봄맞이새가 신나게 밤노래에 새벽노래에 낮노래를 베풀고, 4월로 접어들 즈음에는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개구리 밤노래가 새롭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 둘레에서 퍼지는 새노래가 다릅니다. 눈여겨본다면 잎빛을 따라서 새노래가 다른 줄 알아챕니다. 귀여겨듣는다면 철에 따라서 개구리노래에 새노래에 풀벌레노래에 매미노래가 다 다른 가락으로 찰랑찰랑 춤추는 줄 알아차립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에 이 하루가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 이 하루를 엽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이 하루를 짓는 숨결이 싹터서 퍼집니다. 무엇을 바라보든지 대수롭지는 않아요. 대단하거나 놀라운 곳을 바라보기에 대단하거나 놀랍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본다면 어느 하루나 기쁘고, 사랑이 없을 적에는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길을 잃습니다.
비가 가볍게 뿌리던 엊그제 마을 앞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려서 타는데, 손님이 저 혼자이더군요. 십 분쯤 조용히 달리던 시골버스가 옆 면소재지에 닿자, 그곳 어린배움터를 다니는 아이가 둘 탑니다. 두 아이 가운데 덩치가 거의 어른만 한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빗물과 흙이 묻은 신”을 손잡이에 척 올리고서 손전화에 코를 박습니다. 고작 열 몇 살인 아이가 저희 집에서도 이렇게 엉터리 같은 발짓을 하려나 궁금하더군요. 시골버스에 다른 손님이 하나뿐이니 아무렇게나 굴어도 된다고 여겼을까요. “어린이는 어디에 발을 올려놓나요? 혼자 타는 버스인가요? 모두가 함께 타는 버스인데, 손잡이에 발을 척 올려놓아도 되나요? 학교에서 공중도덕을 안 배우나요?” 하고 말을 거니 얼른 발을 내립니다. 다만 얼굴은 손전화에 박고서 아무 대꾸가 없습니다.
시골아이뿐 아니라, 서울어른도, 버스에서 엉뚱한 짓을 일삼는 분이 꽤 있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뒷자리에 앉은 사람 무릎을 누르도록 등받이를 눕히면서도 “등받이는 끝까지 내리라고 있어요!” 하고 외려 큰소리를 내는 앳된 분을 곧잘 만납니다.
꿈을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빛나면서 둘레를 밝히는 몸짓입니다.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피어나면서 둘레에 별빛을 뿌리는 매무새입니다. 꿈을 안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갉아먹습니다. 사랑을 안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죽어갑니다.
기쁘게 웃고 싶은 마음으로 밥 한 그릇을 조촐히 차립니다. 기쁘게 웃으며 차린 밥 한 그릇을 가만히 누리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먹깨비나 먹보여야 기쁘지 않습니다. 꿈깨비에 꿈보일 적에, 사랑깨비에 사랑보일 적에, 마음밭에서 물씬물씬 오르는 빛줄기가 따사롭게 번지면서 기쁨씨앗으로 뿌리내립니다.
ㅅㄴㄹ
“뭘 그렇게 노려보고 계세요? 곰은 이 주변에 안 살아요.” “츠카사 씨! 아니, 나쁜 귀신이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요.” (24쪽)
“하루 자고 가세요?” “네.” “모처럼 왔는데 관광 좀 하다가 가시지.” “아뇨. 이렇게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광하는 기분이라 괜찮아요.” (25쪽)
“밤엔 숙소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이 고장 음식을 드시고, 온천에 들어갔다가 따뜻한 이불 덮고 주무세요. 지병이 있어도 무리하지 않으면, 여행은 몸에 좋을 거예요. 저는 무기마키 씨가 또 멀리 외출하셨으면 좋겠거든요.” (42쪽)
“청년도 한동안 여기서 햇볕에 몸을 말리다 보면, 딱 적절하게 맛이 들지 않을까?” “곰팡이가 슬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 (66쪽)
“어른이 되면 알 텐데 말이에요. 실패는 배움이라는걸.” (76쪽)
“츠카사 씨, 산에서 저에게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속마음을 얘기해 두고 싶었어요.” “네?”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 털어놓을 만한 얘기가 없어서, 매일 하고 있는 생각을 얘기하는 것 정도밖에 답례를 해드릴 수 없지만 말이죠.” “무기마키 씨는 맨날 그런 생각을 하고 계세요?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아뇨, 저는 술을 못 마셔서, 매실액을 마셔요.” (110쪽)
“그러게요.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몸이 튼튼하지 않거나, 무슨 사정을 떠안고 있으면 본인에게 맞는 직장을 좀처럼 찾기 힘들죠.” (142쪽)
#しあわせは食べて寝て待て
#水凪トリ
흔들림 없는 강인함을 갖고 있잖아
→ 흔들리지 않잖아
→ 단단하잖아
13쪽
이렇게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광하는 기분이라 괜찮아요
→ 이렇게 걷기만 해도 둘러보는 듯해서 즐거워요
→ 이렇게 걸어도 돌아볼 수 있어 기뻐요
25쪽
제가 할머니를 간병할 수밖에 없었어요
→ 제가 할머니를 돌볼 수밖에 없었어요
37쪽
또 멀리 외출하셨으면 좋겠거든요
→ 또 멀리 마실하시기를 바라요
42쪽
녹음의 향기에 감싸여 기분 전환 확실하게 하고 왔어요
→ 푸른내음에 감싸여 바람을 잘 쐬고 왔어요
→ 숲내음에 감싸여 제대로 숨돌리고 왔어요
45쪽
저희 아빠는 저와 엄마를 두고 증발했거든요
→ 우리 아빠는 저와 엄마를 두고 숨었거든요
→ 우리 아빠는 저와 엄마를 두고 내뺐거든요
63쪽
찜 요리를 하면 방 안에 가습이 되더라고
→ 찜을 하면 집안이 촉촉하더라고
→ 찜을 하면 집안이 시원하더라고
71쪽
붙었으면 좋겠어요
→ 붙기를 바라요
10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