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 서울 밖에 남겨나 남겨진 여성, 청년, 노동자이자 활동가가 말하는 ‘그럼에도 지방에 남아있는 이유’
히니 지음 / 이르비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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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22.

인문책시렁 333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히니

 이르비치

 2023.10.27.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히니, 이르비치, 2023)를 읽고서 한참 자리맡에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서울·서울곁·서울밖’ 셋으로 가르는 담벼락이 높은데, ‘서울밖’ 다음으로 ‘시골·두메·섬’으로 더 가르곤 합니다.


  곰곰이 보면 ‘서울곁’도 다 다릅니다. ‘고양’보다 ‘일산’이라는 이름이 드높은 고장은 ‘서울곁·서울밖’이어도 굳이 서울바라기를 안 한다고 느껴요. ‘성남’보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높은 고장도 구태여 서울바라기를 안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부천과 인천은 ‘서울곁’이어도 ‘서울밖’에 가깝습니다. 남양주나 의정부나 구리는 어떨까요? 적잖은 ‘서울곁’조차 ‘서울밖’이기 일쑤요,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온통 ‘서울나라’인 터라, ‘서울로(인 서울)’를 이루지 못 하면 찬밥처럼 여겨요.


  그렇다면 왜 ‘서울·서울곁·서울밖’ 같은 굴레가 생길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서울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부터 ‘시골·두메·섬’을 밑에 깔더군요. 서울곁으로 가지 못 하더라도 시골이나 두메나 섬으로는 안 가려고 합니다. 굳이 서울을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서, 멧골이나 숲이나 바다로 가려고도 안 해요.


  서울에 있는 어느 벼슬터나 일터를 작은고장으로 옮긴들, 서울이 바뀔 일이 없고, 작은고장이 나아질 일도 없습니다. 그저 시늉입니다. 서울이 바뀌려면, 또 작은고장이 거듭나려면, 서울에서도 작은고장에서도 잿집(아파트)과 부릉길(찻길)을 확 줄일 노릇입니다. 걸어서 다니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몰면서 느긋이 일하고 살림하고 어울리고 쉬고 노는 얼거리를 열 적에 비로소 서울도 작은고장도 눈부시게 피어날 만합니다.


  요즈음 온나라를 보면, 서울뿐 아니라 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어느 고장에도 어린이랑 푸름이가 쉴 빈터가 없습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인 꼰대가 노닥거릴 술집이나 노래칸이나 찜질칸은 수두룩하지요. 온갖 찻집과 맛집도 ‘어른이라는 이름인 꼰대’한테 맞춘 곳일 뿐, 어린이나 푸름이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하루로 바꿀 때라야,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부터 바꿉니다.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을 느긋하면서 즐겁게 바꿀 때에는 서울도 바뀝니다.


  몇 해마다 나라지기에 벼슬아치를 갈아치우는 뽑기(선거)를 하지만, 뽑기에 나오는 이들치고 어린이랑 푸름이가 앞으로 이 땅에서 즐겁게 살림을 짓고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헤아리는 뜻을 펴는 이는 여태 한 놈도 없습니다. 누가 어린이를 사랑하는 뜻을 폈나요? 없어요. 누가 푸름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는 뜻을 밝히나요? 없어요.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는 여러모로 뜻있으나, 이래저래 아쉽습니다. 불길을 푸근하게 풀어내는 길을 아직 안 찾거나 못 찾은 듯싶어요.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짝짓기 발자취에 너무 많이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서울밖에서 짝을 찾던 허방다리 같은 나날은 따로 빼내어 다른 책으로 꾸리는 쪽이 나으리라 봅니다. 서울밖에서 안간힘을 쓰고 용을 쓰면서 새길을 찾은 삶에 오롯이 파고들어서 줄거리를 여미었다면 돋보였으리라 봅니다.


  새는 시골에도 숲에도 들에도 서울에도 작은고장에도 삽니다. 예부터 모든 곳이 숲이었어요. 서울이 잿더미처럼 바뀐 지는 기껏 온해(100년)도 안 되었습니다. 온해 앞서는 온나라 어느 곳이나 새가 둥지를 틀고 개구리가 노래하던 푸른터였습니다. 푸른터일 적에는 어린이가 꿈을 키우고 푸름이가 사랑을 그리는 아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그 시기, 성범죄 피해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그러니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어떤 이슈에서만큼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21쪽)


선생님들은 어떻게 보면 성평등한 사람들이었다. 무차별적인 매질은 남학생 여학생을 가리지 않았다. (51쪽)


한편으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는 괴상한 명칭까지 갖다 붙인 정당의 결정답다고 생각했다. (79쪽)


누가 나를 좋아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던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140쪽)


+


나를 수식하는 키워드다

→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 나를 나타내는 말이다

5


우연히 응하게 된 첫 인터뷰에서

→ 문득 처음 말을 나눈 자리에서

→ 어쩌다 한 첫 만나보기에서

5


이걸 시작으로 몇 번의 인터뷰를 더 하게 됐다

→ 이때부터 만나보기를 몇 자리 더 하였다

→ 이때부터 몇 자리 더 만나보았다

5


이 말이 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 말이 삶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런 옛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 오래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7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으로 옮겨간다

→ 서울과 가까이 옮겨간다

→ 서울곁으로 옮겨간다

8


높고 험난한 산맥을 넘지 못할 때가 많았다

→ 높고 벅찬 멧줄기를 넘지 못할 때가 잦았다

→ 높고 거친 줄기를 넘지 못하기 일쑤였다

8


시간이나 지면의 문제로 그동안 충분히 답을 하지 못했다

→ 틈이나 자리가 모자라 그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 짬이나 자리가 없어 그동안 찬찬히 말을 하지 못했다

9


온몸으로 지성미를 뽐내었다

→ 온몸으로 똑소리를 뽐내었다

→ 온몸으로 똑똑하게 뽐내었다

20


자취방으로 배송됐다

→ 혼살이집으로 왔다

→ 혼집으로 날아왔다

24


국과 반찬을 만들 줄 몰랐다

→ 국과 곁밥을 할 줄 몰랐다

26


10만 원의 외식비로 치환되는 엄마의 노동력의 가치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 사먹는 10만 원으로 눙치는 엄마 땀방울이 그지없이 초라해 보였다

→ 마실밥 10만 원으로 갈음하는 엄마 품값이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28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 삯을 맞추려면

→ 빌림삯을 대려면

32


잔고를 먼저 떠올리며 계산하게 됐다

→ 돈을 먼저 떠올리며 셈하였다

→ 남은돈을 먼저 떠올리며 따졌다

33


그 말들이 매번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 이 말에 늘 허전했다

→ 이 말에 으레 쓸쓸했다

34


더 이상 내 외박에 관여하지 않았다

→ 내가 밖에서 자도 더는 뭐라 않는다

→ 나들잠이어도 더 뭐라 않는다

→ 마실잠이어도 더 뭐라 않는다

37


나의 먹고사니즘만으로도 충분히 고달픈 상황에

→ 나 먹고살기만으로도 이미 고달픈 판에

→ 혼자 먹고살기로도 벌써 고달픈데

37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무차별로 응징했다

→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마구 밟았다

→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모질게 뭉갰다

44


오랜 시간 소화되지 않아 숙변처럼 마음 어딘가에 딱딱하게 굳어버리기도

→ 오랫동안 삭지 않아 묵똥처럼 마음 어딘가에 굳어버리기도

→ 오래 꺼지지 않아 된똥처럼 마음 어딘가에 딱딱하게 있기도

47


조롱하는 추태까지 보였냐고

→ 놀리는 꼴까지 보였냐고

→ 비웃는 짓까지 보였냐고

→ 깔보는 꼬라지까지 보였냐고

50


위치는 2위로 강등되었다

→ 자리는 둘째로 내려갔다

→ 둘쨋칸으로 옮겼다

→ 버금으로 떨어졌다

53


독서보다는 사교의 목적이 강해서

→ 읽기보다는 만나는 뜻이 짙어서

→ 읽기보다는 어울리려는 뜻이라

65


문화적 궁핍이라는 연료는

→ 멋이 없다는 밑동으로

→ 놀잇감이 없다는 마음은

→ 누릴거리가 적다고 여겨

66


사회가 주요하게 다루지 않는 담론을

→ 나라가 깊이 다루지 않는 얘기를

→ 둘레에서 크게 안 다루는 목청을

67쪽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거점을

→ 책모임을 할 수 있는 밑동을

→ 읽기모임을 할 수 있는 밭을

77쪽


동창이자 나의 동문이었다

→ 나랑 배운 나란내기였다

→ 나랑 또래요 배움벗이다

81쪽


+


거의 모든 업장에서는

→ 거의 모든 곳에서는

→ 거의 모든 일터에서는

→ 거의 모든 데에서는

95


공실을 채우려 가격을 내린

→ 빈칸을 채우려 값을 내린

→ 빈집을 채우려 삯을 내린

→ 빈터을 채우려 싸게 낸

98


망각의 바다에서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 깜빡질 바다에서 휩쓸리지 않겠다

→ 빠뜨리는 바다에서 안 휩쓸리겠다

107


완독까지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 다읽기까지 몇 남지 않았을 때

→ 끝까지 몇 쪽 남지 않았을 때

109


건물주는 깐깐하고 인색한 사람이었다

→ 집지기는 깐깐한 사람이었다

→ 집임자는 깍쟁이였다

110


이사하더라도 고정비용을 줄이기 수월하도록

→ 옮기더라도 늘삯을 줄이기 수월하도록

→ 떠나더라도 붙박이돈은 줄이기 수월하도록

113


주휴수당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 쉼삯을 받아 본 적이 없다

→ 쉬는몫을 받아 본 적이 없다

118


일상이 무너지는 듯한 후폭풍은 없었다

→ 하루가 무너지는 듯한 뒤끝은 없었다

→ 삶이 무너지는 듯한 멍울은 없었다

129


주량이 세다는 것에 쓸데없는 자부심이 있던 때였다

→ 술배가 세다고 쓸데없이 자랑하던 때였다

→ 술이 세다고 쓸데없이 뻐기던 때였다

137


+


외시경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그가 서 있었다

→ 밖눈을 들여다보니 참말로 그가 있다

→ 볼록눈을 들여다보니 참말로 그가 섰다

138쪽


나름의 충격요법을 활용했는데

→ 내 나름대로 세게 했는데

→ 나로서는 놀래켰는데

→ 나는 뒤통수를 쳤는데

169쪽


담배를 피우면서 흡연하는 여자를 비난하는 그들을 보면서도

→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순이를 헐뜯는 그들을 보면서

→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순이를 할퀴는 그들을 보면서

1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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