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식은밥 2024.3.8.쇠.



갓 지은 밥은 따뜻하고 살살 녹아. 봄에 갓 돋는 잎과 꽃송이도 부드럽게 살살 녹아. 봄볕에 겨울눈과 겨울얼음을 녹이면서 온누리를 풀어내듯, 새로 찾아드는 철에 퍼지는 기운을 품은 나물은 너희 몸을 고이 풀어주지. 따뜻밥으로 몸을 녹여. 솥에 남은 밥은 천천히 식어. 따뜻밥으로 몸을 녹인다면, 식은밥으로 몸을 북돋아. 따뜻할 적에도 식은 뒤에도, 차근차근 맞아들여서 차분하게 살찌우지. ‘식은밥’이란 “남은 밥”인데, 남기에 조금 더 넉넉히 둘레에 나눌 수 있어. 이웃하고는 따뜻밥을 나눌 노릇이되, “더 먹지 않고 남은 살림”을 스스럼없이 베풀 만해. 따뜻하지 않고 식었으니 ‘차갑게’ 군다고 여기기도 하더구나. 그렇지만 밤이슬이나 새벽이슬을 어느 누구도 ‘차갑다’고 여기지 않아. 살림물은 늘 ‘차게’ 흐르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구나 싶도록 솟는 샘물이고 냇물이거든. 마음이 식으니, ‘남은밥’을 싫어해. 마음이 따뜻하니 ‘남은밥’을 고마이 받아서 따뜻하게 살려. 생각해 보렴.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재느라 스스로 눈꺼풀에 가리지 않니? 밥을 짓고 남겨서 나누는 따뜻마음을 느낀다면, ‘살림밥’을 알아볼 테고, 살림길과 살림말과 살림빛으로 포근히 감싸게 마련이야. 일부러 식혀서 먹기도 하는 밥이야. 찬밥·더운밥을 가리거나 따지려 하니, 자꾸 싸우는구나. 나눔밥·살림밥을 바라보렴. 온밥·모둠밥을 헤아리렴. 바탕을 다스리면 돼. 바다처럼 넉넉하니 즐거워. 바람처럼 시원하니 싱그러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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