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부산한 부산 (2024.1.19.)
― 부산 〈스테레오북스〉
마산에 있는 이웃님이 낸 어느 책을 2018년에 읽다가 ‘마산 산복도로’를 적은 대목에서 놀란 적 있습니다. ‘산복도로’는 부산에 있는 언덕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여겼는데, 나라 곳곳에 더 있더군요. 제가 나고자란 인천에 있는 비탈진 골목마을은 ‘언덕·언덕배기’라든지 ‘재·고개’ 같은 이름을 씁니다. ‘산복(山腹)’에 ‘도로(道路)’를 붙인 일본스런 한자말은 ‘고개·고갯길·고갯마루’나 ‘비탈·비탈길’이나 ‘언덕·언덕길’이나 ‘재·잿길’이나 ‘멧길·묏길’로 고쳐쓸 만합니다.
낱말책을 쓰는 몸이어도 아직 못 잡아채거나 모르는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늘 새로 맞이하면서 배웁니다. 언제나 새로 가다듬고 다독입니다. 지난 한 해에는 쉴 겨를이 빠듯한 채 일손을 잡았고, 올해에는 쉬엄쉬엄 하자고 여기며 부산마실을 합니다. 오래나무 한 그루가 오래마을과 오래집을 품는 결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쓰고 글자락을 여밉니다. 처음에는 씨앗 한 톨이고, 이내 어린나무요, 곧 푸른나무에, 여러 또래나무하고 어울리면서 숲나무를 이룹니다.
모든 일에서 즐겁고 기쁘게 마련입니다. 또 모든 일에서 아쉽고 서운할 수 있어요. 즐겁거나 서운할 적에 갈마드는 마음에 따라, 다 다른 말이 태어나고, 이 다른 말을 달래면서 사투리가 차츰차츰 자란다고 느낍니다.
복닥이는 칙폭길로 부전나무까지 달립니다. 이른새벽부터 왜 그런지 길이 막혀 버스를 놓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지나갑니다. 문득 ‘부산하다’라는 우리말을 곱씹으면서 〈스테레오북스〉로 걸어갑니다. ‘부’가 밑동이고, ‘붐비다·북적이다·부대끼다·부리나케’하고 잇습니다. ‘부글부글·바글바글’에 ‘불다·붓다·붇다·붙다’도 맞닿아요. 그리고 ‘불·부아·뿔’도 얽히지요. 이 곁에는 ‘부지런·바지런’도 어울립니다. 이쯤 펼치면 ‘부산하다’를 알 만할까요?
한자로 가리키는 ‘부산’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이곳은 어쩐지 우리말 ‘부산하다’가 어울리지 싶습니다. 북적이고 불타는 마음도 붇되, 부지런하고 바지런히 살림을 짓는 터전인걸요. ‘부·바’가 맞닿기에 ‘붉다·밝다’도 얽혀요. 불은 타오르기도 하면서, 밝히기도 합니다.
책집마다 책손님이 붐벼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을책집이 북적북적 책수다로 물결쳐도 즐겁습니다. 숲에 뭇나무가 어우러지면서 푸르고 아름다우며 푸근하듯, 책터마다 뭇책과 뭇수다와 뭇살림을 아우른다면 새롭고 사랑스러우며 넉넉하지 싶어요. “더 많이”가 아닌 ‘오붓·가붓’ 만나면서 봉긋 돋는 봄꽃이면 맑고 밝아요.
ㅅㄴㄹ
《집앞목욕탕 vol.2》(매끈목욕연구소 편집부, 싸이트브랜딩, 2023.11.10.)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9.6.24.)
#O Ovo e a Galinha 1960년
《피아노 시작하는 법》(임정연, 유유, 2023.4.14.)
《그때, 우리 할머니》(정숙진·윤여준, 북노마드, 2016.12.12.첫/2019.10.10.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