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거울 (2022.5.24.)

― 인천 〈시와 예술〉



  우리가 문득 만나서 손에 쥐는 책 하나는, 언제나 새롭게 둘레를 느끼고 맞아들이라고 이끄는 자그마한 빛줄기일 듯싶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보여주고서 밝힙니다. 저 책은 저렇게 들려주고서 속삭입니다. 그 책은 그렇게 알려주고서 노래합니다. 더 많이 읽히지만 길잡이하고 먼 책이 있다면, 아직 덜 읽히지만 어진 키잡이 노릇인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에 맞추어 줄거리를 짜는 책이 있고, 곧 사라질 수 있는 시골을 헤아리며 이야기를 여미는 책이 있어요.


  어떤 줄거리이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 만하기에 슥 보아넘길 일이지 않아요. 어린이부터 알아보도록 묶는 줄거리이기에 더 차근차근 새기면서 나눌 살림길을 익힐 수 있어요. 온사랑을 다하는 하루를 담는 줄거리라면 되읽고 곱새기면서 마음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을 만합니다.


  적잖은 책은 잘팔리기를 바라는 뜻으로 나오더군요. 잘팔려도 좋을 텐데, ‘좋다’란 낱말은 ‘좁다’하고 말밑이 같아요. “좁게 보기 = 좋게 보기”입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인 ‘좋다·좋아하다’는 “온누리를 두루 보는 눈썰미가 아닌, 어느 곳만 좁게 보며 받아들이려는 매무새”예요. “잘팔리면 좋은걸 = 온누리를 두루 넓게 깊이 안 보더라도,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인 굴레로 치닫곤 합니다.


  골목빛을 헤아리면서 〈시와 예술〉에 깃듭니다. “하루를 보내는 삶”이 아닌 “살림을 짓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웃집을 바라봅니다. 나부터 스스로 하루그림과 살림그림을 헤아리고, 마음을 돌보는 씨앗을 이웃한테 건네려고 합니다. 책이란, 서로 새롭게 잇는 길을 찾아나서는 ‘읽몫’이요 ‘읽목’이지 싶어요. 읽으며 나누는 몫입니다. 읽으며 나아가는 목입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하나인 넋일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어느 이웃 눈물도 생채기도 멍울도, 또 웃음과 노래도 고루 느끼며 나누게 마련입니다. 들꽃을 마주하듯 이웃을 맞이하고 어린이를 바라볼 적에는, 늘 사랑과 숲 두 가지를 왼손과 오른손에 놓고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로 피어나면서 빛나지 싶어요.


  못물도 냇물도 바닷물도 우리 얼굴과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작은 빗방울과 이슬방울과 눈물방울도 우리 넋과 숨결을 담는 거울이에요. 겉모습에 서린 숨소리를 읽습니다. 겉낯에 감도는 숨빛을 들여다봅니다.


  살갗은 몸을 감싸면서 보듬습니다. 아주 얇은 가죽인데 속살을 지키고 뼈와 힘살이 맞물려 움직이도록 북돋웁니다. 책은 매우 얇은 종이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얇고 가볍지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부드럽게 달래면서 이야기를 이어줍니다.


ㅅㄴㄹ


《anywhere words》

《unspolen words》(Jung A Kim, 김정아, 2017)

《착하게 살아온 나날》(조지 고든 바이런 외/피천득 옮김, 민음사, 2018.6.1.)

《Birds in a Book》(Lesley Earle 글·Rachel Grant 그림, Abrams Noterie, 201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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