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창비시선 402
이근화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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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8.

노래책시렁 410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창비

 2016.9.30.



  포근포근 숨결이 깃든 노래로 새봄을 맞이합니다. 지난해하고 올해에는 첫봄 길턱에 비날을 잇습니다. 앞으로도 이즈음이 비날로 길게 이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온나라가 하도 매캐하니까요. 철바람이 바뀌면서 옆나라에서 먼지바람이 날아오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서 내뿜는 모진 먼지바람도 대단합니다. 부릉부릉 그만 달리지 않는다면 파란하늘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날개를 덜 띄우거나 멀리하지 않는다면, 참말로 푸른들까지 잃을 만합니다.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를 읽는데, 오늘날 숱한 글자락도 서울을 닮는구나 싶습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만 해도 고장마다 다 다르게 글꽃이 피어났다면, 이제는 그냥그냥 서울글입니다. 낮에도 땅밑이 넓고 훤한 서울이고, 밤에도 여기저기 번쩍거리는 서울입니다. 어디서나 쏟아지는 사람물결이고, 서울곁에서 일자리를 오가면서 고단한 사람바다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에 매이는 삶이자, 온통 서울바라기인 얼개이니, 글 한 줄도 서울노래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은 밥을 먹여 주지 않아요. 서울은 돈벌이가 될는지 몰라도, 해랑 바람이랑 비를 누리는 터전이 아닙니다. 무엇을 머금으면서 글줄을 여밀 적에 스스로 빛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곧 쓰레기가 될 이 비닐장갑은 / 우주선의 이름 같다 / 이백매인지 아닌지 세어보지 않겠지만 / 미아가 될 우주선의 운명처럼 / 내 손은 이백번씩 / 투명하게 빛날 것이다 (코맥스 200/12쪽)


당신의 입술은 회색 / 쉭쉭 바람 소리가 난다 / 당신의 말은 달콤해 / 내가 스르르 넘어간다 (요양원/22쪽)


+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근화, 창비, 2016)


버려진 분홍 땡땡이 팬티

→ 버린 배롱빛 물방울 속옷

→ 버린 배롱빛 알록 속옷

8쪽


오늘 나의 산책과 명상에는 무늬가 없다

→ 오늘 나는 무늬가 없이 걷고 고요하다

9쪽


한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

→ 책 하나가 나를 낳았다

14쪽


옥수수알들이 옥수수를 향해 결의하듯이

→ 옥수수알이 옥수수한테 곱새기듯

→ 옥수수알이 옥수수한테 다짐하듯

24쪽


우리의 발걸음이 더 아름다워진 걸까

→ 우리 발걸음이 더 아름다울까

→ 우리 발걸음이 더 아름다운가

30쪽


머리카락이 돋았다 그것도 나의 것이다

→ 머리카락이 돋았다 바로 나이다

35쪽


빗줄기가 알고 있는 당신의 어깨를 내가 모르니까 더 즐거운 것 같다

→ 빗줄기가 아는 그대 어깨를 내가 모르니까 더 즐거운 듯하다

41쪽


누군가의 심장을 뚫지 않아도 좋았다

→ 누구 가슴을 뚫지 않아도 기뻤다

→ 누구 마음을 뚫지 않아도 반가웠다

44쪽


이별을 고하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 헤어지자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 손을 흔드는 이를 만났습니다

60쪽


비행기에 몸을 싣고 불행의 씨앗들을 날리며

→ 날개에 몸을 싣고 고된 씨앗을 날리며

→ 날개에 몸을 싣고 동티 씨앗을 날리며

103쪽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 눈사람이 서 있다

→ 재가 네 내음인 죽음에 눈사람이 선다

→ 재가 네 냄새인 죽음에 눈사람이 있다

105쪽


천변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었지만

→ 냇가는 가지런히 다듬었지만

→ 물가는 가지런히 손보았지만

11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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