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짜는 길 2024.2.15.나무.



그물을 짜면 그물로 낚고 담아. 천을 짜면 천으로 옷을 지어. 눈물을 짜면 어쩐지 모든 일이 슬프고 눈물이 자꾸 나와. 이야기를 짜면 두런두런 오가는 말에 새록새록 그림이 태어나. 하루틀을 짜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스로 어떻게 보내면서 즐거울는지 환하게 알아봐. ‘짜임새’란 ‘짜는 길’이야. 엉성하게 짜니 엉성할 테지. 꼼꼼하게 짜서 꼼꼼할 테고. 겨울옷은 어수룩하게 짜다가는 찬바람이 숭숭 들어와.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바라보고서 받아들이려는 마음일 때라야 짤 수 있어. 아주 작은 한 코라도 슬쩍 넘기려 하다가는, 그만 뜨개질이 통째로 엉성하단다. 나비나 새를 보겠니? 날개를 다는 몸으로 거듭나거나 자랄 적에는 왼오른날개가 나란하고 같아야 해. 한쪽이 크거나 작으면 못 날아. 사람몸은 왼손과 오른손을 나란히 고르게 써야 제대로 지어. 왼발과 오른발을 나란히 고르게 뻗어야 제대로 걸어. 어느 쪽을 좋아한다면서 그쪽으로 기울거나 쏠리면 그만 무너진단다. 좋아하는 길이나 안 좋아하는 길을 자꾸 만들면서 스스로 흔들리다가 쫄딱 무너지지. 너희는 으레 “어떻게 ‘좋아하는 길’이 없을 수 있느냐?“고 묻더라. 그러나 스스로 되묻기를 바라. “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지?” 하고 곰곰이 짚어 보렴. 꿈·사랑·살림·숲은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길이 아니란다. 오롯이 삶이라는 길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품을 노릇이야. ‘일’을 하고 ‘놀이’를 하면 될 뿐이야. ‘좋아하는 일’이나 ‘싫어하는 일’을 자꾸 가르다가는 죽어간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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