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 내가 안 쓰는 말 . 직업 2023.7.21.



바람이 일지 않는 날은

숨죽인 채 시든다

바람이 일어나는 날은

숨돌리며 살랑인다


바다가 일지 않는 곳은

구름이 없이 마른다

바다가 일렁이는 곳은

비구름 생겨 씻는다


가볍게 거들거나

심부름 맡더라도

스스로 나설 때라야

일손으로 여겨


삶을 일궈서 일이야

살림을 이뤄 일이지

사랑을 이야기하는 일이고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이다


ㅅㄴㄹ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는 따로 없는 ‘직업(職業)’일 텐데, 이 한자말은 “집안을 꾸리며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배움터를 다니는 사람은 따로 ‘돈벌이’를 안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살림이 안 넉넉하기에 짬을 내어 돈벌이를 할 수 있어요. 이른바 ‘곁일·짬일·틈새일·틈일·사잇일(아르바이트·알바)’이라고 하겠지요. ‘직업 = 돈벌이’인 터라, 집안일을 도맡는 사람은 마치 “직업이 없다”고 여겨 왔습니다. 한집안을 이루는 사람 가운데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쪽한테는 갖가지 일손을 맡기면서, 돈하고 멀 뿐 아니라 실업자(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삼기 일쑤였는데,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아기를 돌보는 일을 남한테 맡기려면 돈을 꽤 치러야 합니다. 여러 학원도 “집에서 가르칠 수 있는 일을 집에서 안 가르치고 남한테 맡기기”에 목돈이 들어갑니다. 가만히 보면 수수하게 ‘일’을 하는 사람은 돈하고 멀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말 ‘일’은 스스로 물결을 일으키듯 즐겁게 맡는 길을 가리키면서, 돈을 버는 길도 나란히 가리켜요. 벌잇감 못지않게 일자리와 살림부터 챙길 적에 하루가 빛납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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