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며 업힌
이정임 외 지음 / 곳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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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문학읽기 2024.3.3.

인문책시렁 337


《안으며 업힌》

 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곳간

 2022.5.18.



  《안으며 업힌》(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곳간, 2022)은 부산에서 살아가고, 살아왔고, 살아내는 하루를 다섯 사람이 다섯 갈래로 다섯 눈길을 들려주는 꾸러미입니다. 골목이나 마을이나 길을 가리키는 이름을 들여다보니 부산살림을 들려주는구나 싶은데, 이런 이름을 ㄱ이나 ㄴ이나 ㄷ으로 숨기면,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으레 마주하는 살림살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이웃을 안고 동무를 업습니다. 마음을 안고 생각을 업습니다. 하루를 안고 오늘을 업어요. 이야기를 안고 노래를 업습니다.


  품에 안기는 아이는 환하게 웃습니다. 등에 업히는 아이는 느긋이 노래하다가 꿈누리로 갑니다. 아이를 안는 어버이는 함께 포근합니다. 아이를 업고 거니는 어버이는 언제나 새록새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알진 기스락에 보금자리를 지은 사람들은 날마다 디딤돌을 숱하게 오르내리면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발걸음이 안 닿는 데에 꽃씨를 심고, 해가 잘 드는 데에서 푸성귀를 돌봅니다. 사람 손길이 안 닿는 데에는 개미가 풀씨를 나르고, 새가 톡 나무씨를 떨굽니다.


  살아가면서 한 발짝을 디딥니다. 살아오면서 살짝 멈추어 둘레를 봅니다. 살아내면서 서로 살림지기로 만납니다. 몸뚱이 하나를 누이는 집에서 기운을 차립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스칠 만한 골목을 고양이도 사뿐히 지나갑니다.


  북적북적하니 부산스러울 만하지만, 이따금 슬그머니 사람물결에서 빠져나와 구름바라기를 합니다. 가까이에 바다를 품고, 안쪽으로 마을이 넓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한 곁에도 새가 내려앉고,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사그라드는 밤에 풀벌레가 살며시 나와서 어울립니다.


  이제 나라 곳곳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모든 고장에 책집거리나 책집골목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부산 책집골목은 꽤 수그러들었으나, 두런두런 발길이 모이고 흐르는 삶터로 잇습니다. 오늘까지 책살림을 이으며 조촐하니 어깨동무하는 책집을 품는 부산은, 서울에도 없고 다른 큰고장에 없는 삶빛이 피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여태까지 살아낸 오랜 이야기가 있기에 새로 여미어 책 한 자락으로 꾸립니다. 이곳에서 새로 내는 이야기책은 모름지기 옛삶이게 마련입니다. 옛삶을 새책으로 엮고, 이렇게 태어난 새책은 시나브로 손길을 받아 손길책(헌책)으로 거듭납니다. 미처 손길을 못 받더라도 머잖아 손길을 받을 테고, 한참 손길을 못 타더라도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알아볼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눈여겨볼 수 있어도 반갑습니다. 좀처럼 들여다보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안으며 업힌》이 속삭이는 삶노래애 귀를 기울이면서 느긋할 수 있습니다. 내 나름대로 일군 하루를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오붓이 말을 섞을 만합니다.


ㅅㄴㄹ


고구마를 먹고 싶은데 고구마 트럭이 오지 않는다. 배달주문을 하긴 비싸다. 어쩌면 이 불편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채소를 키우게 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정착한 사람의 마음일까. (27쪽)


아무튼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늘 옷이 넘치는 수준인 데다가 누가 가라고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부산에 도착하면 왠지 발길은 국제시장으로 향하게 된다. (41쪽)


숟가락을 들고 밥덩이와 달걀프라이를 쪼개 입에 넣었다. 같이 나온 시락국 국물을 떴다. (73쪽)


한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더 알아가는 것도 많고요. 각자의 생각이죠. 누군가는 우울할 수도 있고요. (15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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