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2.28. 종이새뜸을 읽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다시 낱말꾸러미를 추스릅니다. 올해 2월에 태어난 《우리말꽃》에도 책끝에 낱말꾸러미를 붙이려고 샅샅이 되읽었고, 3월∼4월에 태어날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에 실을 낱말꾸러미를 헤아리며 또 샅샅이 되읽습니다. 한참 읽고 갈무리하노라면 하루가 훌쩍 지납니다. 집안일도 하고, 여러 살림도 보듬어야 하기에, 셈틀을 쉬고서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아직 끝이 먼 《손질말 꾸러미》도 나란히 추스르는데, 며칠 사이에 ‘본격적·지속적·근본적’을 다시 손질했고, ‘전문적’을 새로 손질합니다. ‘열대우림’은 ‘더운숲·더운비숲’으로 옮길 만하다면, ‘찬숲·추운숲’도 나란히 있을 테지요. 문득 살피니 ‘한대림·냉대림’처럼 일본스런 한자로만 엮는 듯싶어요.
일본말씨 ‘문답무용’을 고치는 길을 살핍니다. 망나니 이승만이 퍼뜨린 ‘사사오입’이란 낡은 말씨를 고치는 길도 짚습니다. ‘자유·민주’는 어떤 나라지기나 우두머리가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날개를 펴고 마음눈을 틔우면서 스스로 피어난 삶길이요 살림터입니다.
우리는 왼날개랑 오른날개를 나란히 펴야 날 수 있어요. 왼발하고 오른발을 갈마들어야 걸을 수 있고, 왼손하고 오른손을 함께 써야 빚고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돌아보면, 어쩐지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없는 듯싶어요. 입으로는 왼켠이라느니 오른켠이라느니 읊지만, 이쪽도 저쪽도 왼오른이 아닌 힘켠이나 돈켠이나 이름켠일 뿐이로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우리나라에는 왼오른이 아직 서지 않았어요. 힘·돈·이름을 붙들거나 거머쥐면서 담벼락을 쌓는 끼리질이 판칠 뿐입니다.
서울 이웃님 한 분이 종이새뜸 〈한겨레〉를 찾아내어 보내주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더는 종이새뜸을 못 사는구나 싶었는데, 아직 살아남은 종이를 챙겨주었어요.
말넋삶을 추스른 《우리말꽃》을 조그마니 알리는 글자락을 읽어 봅니다. 옆에는 서울 마을책집 〈소요서가〉를 들려주는 글이 있습니다. 엊그제는 주시경 님이 쓴 《국어문법》을 새로 읽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닐 테지만, 우리는 누구나 ‘한글’이라는 우리글을 쓰면서도 막상 주시경 님이 남는 글이나 책을 건사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읽지도 않고, 찾아보지도 않고, 알려고도 않습니다.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글씨가 왜 사라졌는지 생각하지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1900년 앞뒤로 주시경 님이 갈무리한 우리말결(국어문법)은, 우리 말소리를 우리 글씨로 담는 길을 처음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우리 말소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었으나, 이 대목을 읽어내는 이웃님이 앞으로는 하나둘 나타날 수 있겠지요.
예전에 한문과 중국말만 쓰던 힘바치·글바치·돈바치는 우리말을 몰랐습니다. 오늘날 일본말씨와 옮김말씨(번역체)에 물든 글바치·이름바치·힘바치는 우리말을 모릅니다. 예나 이제나 말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을 모릅니다. 옛날이건 오늘날이건 말을 알고 스스로 짓는 사람은, 마음을 스스로 가꾸고 펴면서 사랑하는 살림살이를 손수 지으면서 베푸고 나누는 하루를 즐겁게 누립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