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헌책집이 품는다 (2023.12.22.)

― 광주 〈광일서점〉



  우리나라는 작은 듯해도 넓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녘하고 높녘 날씨가 확 다릅니다. 더욱이 시골은 한여름에 아무리 펄펄 끓어도 별이 돋는 밤이면 서늘하고, 한겨울에 아무리 얼어도 해가 나는 낮이면 사르르 녹아요. 겨울이 깊어가는 해끝에 광주마실을 갑니다. 먼저 계림동 쪽으로 거닐어 〈광일서점〉에 닿습니다.


  책집 할배는 오늘도 잘 계십니다. 작은 새책집은 꾸준히 늘지만, 작은 헌책집은 꾸준히 사라집니다. 책이란 돌고돌게 마련인데, 돌고돌 책길을 잇는 끝자락인 바다 노릇을 하는 헌책집을 눈여겨보는 젊은 이웃이 너무 적어요.


  한 사람이 한 벌을 읽고서 사라져야 할 책이 아니라면, 책숲에서 빌리는 사람이 없어서 치워야 하는 책이 아니라면, 손길을 새롭게 받기를 기다리는 책이 깃들 쉼터인 헌책집을 눈여겨보겠지요. 어느 나라이건 버림받는 책이나 잊히는 책이 멧더미입니다. 퍽 오래 손길을 못 받은 책이더라도 읽힐 값이 없지 않아요. 읽힐 값이 깊고 넓지만 오히려 손길을 못 받고 스러지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오늘 〈광일서점〉에 여러 겹으로 쌓인 ‘새 헌책’은 광주 어느 열린배움터에서 우리말글을 가르치던 분한테서 잔뜩 흘러나왔습니다. 배움지기 한 분이 흙으로 떠난 듯싶어요. 이 배움지기는 일본 어느 열린배움터 배움지기하고 책을 주고받은 듯합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책을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책을 일본으로 보내어 서로 배움길을 열었구나 싶군요.


  마지막으로 알아볼 손길이 이 책꾸러미를 품었고, 고맙게 하나하나 쓰다듬습니다. 이름으로만 들은 ‘가나자와 쇼자부로’ 책을 구경합니다. 일본도 처음부터 ‘국어(國語)’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으나, 어느새 ‘국어’란 이름을 썼고, 어리석은 싸움판이 끝장나고서 한참 지나고 난 뒤부터 ‘국어’란 이름을 ‘일본어’로 바꾼 이웃나라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국어’를 바보처럼 붙듭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려 하기에 배웁니다. 생각에 생각을 나누려 하기에 살림을 짓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마음에 심기에 사랑이 싹틉니다. 모든 생각은 말 한 마디에서 태어납니다. 말을 허투루 지나치면 마음이 낡습니다. 말을 알뜰히 돌보면 마음이 환합니다. 말을 업신여기면 마음이 찌듭니다. 말을 곱게 살리면 마음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우리는 ‘길’을 갈 뿐입니다. ‘-즘·주의·노선·방향·정책’이 아닌 ‘길’을 갈 일입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길을 가면서 ‘길듭’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라면, 길을 가며 기운이 나고 꿈을 기르고 슬기가 깊습니다.


ㅅㄴㄹ


《남영동》(김근태, 중원문화, 1987.9.30.첫/1988.6.20.4벌)

《학교와 사회》(W.파인버그·J.F.솔티스/고형일·이두휴 옮김, 풀빛, 1990.9.30.)

《내 고장 전통 가꾸기》(편찬위원회 엮음, 완도군, 1981.12.30.)

《江戶語の辭典》(前田勇 엮음, 講談社, 1979.10.10.첫/1995.8.22.15벌)

《문맥서평 제2호》(출판편집자협의회 문맥회, 미래사, 1988.7.4.)

《敬語法の硏究 訂正版》(山田孝雄, 寶文館, 1924.6.20.첫/1931.6.20.고침)

- 巖松堂書店. 東京 神田

《國語學通論》(金澤庄三郞, 早稻田大學出版部, 1923.)

- 가나자와 쇼자부로 1872∼1967

《新修 國語學史》(東條操, 星野書店, 1948.5.20.)

- 一九四八年 六月 三十日, 京都女專 國文科 

《防災科學 震災》(岩波茂雄 엮음, 岩波書店, 1935.4.15.)

- 朝鮮總督府 氣象臺

- 觀測所 光州出張所 14.9.7.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유하·하재봉·함민복·함성호·김정란, 세계사, 1992.1.1.첫/1992.1.30.2벌)

《에코스파즘(발작적 경제위기)》(앨빈 토플러/이희구 옮김, 한마음사, 1982.9.20.)

《語錄 民族의 소리》(홍선희 엮음, 태극출판사, 1978.11.25.)

《민족사의 불기둥 1》(이은상, 청년저축조합·횃불사, 1971.11.30.)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바다출판사, 2019.4.8.첫/2019.5.15.2벌)

《번역어 성립 사정》(야나부 아키라/서혜영 옮김, 일빛, 2003.4.1.)

- #飜譯語成立事情 #柳父章 1982년

《역사속의 민중과 민속》(한국역사민속학회 엮음, 이론과실천, 1990.9.25.)

《노동하는 인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교황 요한 바오로 2세/범선배 옮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3.12.1.첫/1983.12.31.재판)

《註解 新約聖書》(黑崎幸吉, 明和書院, 1930.12.10.첫/1953.3.29.10벌)

《月刊牧會 별책부록 : 敎會學校 프로그램과 壯年의 責任》(칼드웰/오소운 옮김, 월간목회사, 1978.3.1.)

《月刊牧會 별책부록 : 韓景職 牧師의 牧會論》(이동섭, 월간목회사, 1978.4.1.)

《꼬마 니콜라 4 니콜라의 멋진 추억》(L.고시니·장 자크 상페/민희식 옮김, 거암, 1986.11.30.)

《동녘문고 3 여성과 노동》(이명희 엮음, 동녘, 1985.5.15.)

《산업신서 13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편집부 편역, 광민사, 1981.6.22.)

《백산문고 5 노동조합의 조사연구입문》(편집부 엮음, 백산서당, 1984.5.30.)

《大說 ‘南’》(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12.25.첫/1984.10.20.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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