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시선(솔의 시인) 4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402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허만하

 솔

 2002.12.10.



  우리 곁에 아이가 있으면 언제나 아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말빛을 펴게 마련입니다. 우리 곁에 아이가 없으면 아이하고 나눌 말씨를 잊게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곳에서 말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마음을 소리로 옮깁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에는 ‘문학이라는 시를 엮느라 흘리는 땀방울’이 가득합니다. 땀냄새 나는 글을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서 두바퀴를 달려 멧골을 오르내리거나 바닷가를 돌거나 들판을 가를 적이면, 머리부터 샘솟는 땀이 볼을 타고서 길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등판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핍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안 힘들어?” 하고 묻고,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 주면 언제나 즐겁지.”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은 수레에 앉아 노래하다가 잠들고, 아이들이 잠들면 이 두바퀴를 달리면서 숨이 가쁘더라도 찬찬히 고르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허만하 님은 ‘알뜰히 짜고 엮은 글’을 남깁니다. 다만, 아이한테 남겨 줄 만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짜는 꾸밈새’만으로는 빛이 나지 않고, 씨앗으로 싹트지 않거든요. 모든 새는 다 다르게 노래하는데, 다 다른 새소리를 글로 옮기려 한다면 ‘머리로 짜낼’ 수 있지 않겠지요.


ㅅㄴㄹ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높이뛰기 선수가 뛰어오른 하늘에서 잠시 머무는 것과 같다. (물결에 대해서/35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곰소 포구 지나 선운사 감나무 추운 가지 끝 노을 머금은 까치밥 찾는 길에 개펄빛 물결이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선운사 감나무/47쪽)


+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마음길을

15쪽


겨울나무의 혼은 오히려 건조하다

→ 겨울나무 넋은 오히려 딱딱하다

→ 겨울나무 숨은 오히려 깡마르다

16쪽


앞뒤로 겹치는 능선의 선율

→ 앞뒤로 겹치는 등성이를

→ 앞뒤로 겹치는 멧줄기를

19쪽


적설층의 시린 무게를 안고 빙하는 협곡을 서서히 흐른다

→ 시린 눈켜 무게를 안고 얼음은 고랑을 천천히 흐른다

→ 시린 눈더미를 안고 얼음장은 골을 넌지시 흐른다

→ 시린 눈밭을 안고 얼음더미는 골짜기를 가만히 흐른다

24쪽


낯선 지형이 풍경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곳이 그림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땅이 보일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31쪽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 물결은 무너지려고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무너지기 앞서 살짝 숨을 죽인다

35쪽


잔모래 풀풀 날리는 모래사장에 내려서서

→ 잔모래 풀풀 날리는 땅에 내려서서

→ 풀풀 날리는 모래밭에 내려서서

40쪽


다른 별의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투명한 표면장력

→ 다른 별 하늘에 뜬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볼록뜨기

→ 다른 별 하늘에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겉뜨기

46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 물결은 스스로 풀어낼 때까지 넌출진 첫물을 몸으로 밝힌다

→ 물결은 스스로 풀 때까지 뒤엉킨 첫날을 몸으로 털어놓는다

47쪽


인적 없는 해안선 물가를 걷고 있는 지금

→ 발길 없는 바닷가를 걷는 오늘

→ 조용한 바닷가를 걷는데

→ 허전한 바닷가를 걷는 이때

60쪽


아득한 탄생의 중심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남색 엷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첫복판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엷고 검파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처음마당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쪽빛 엷은 껍질을 찢고

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