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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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6.

인문책시렁 345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6.7.15.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6)가 처음 나올 즈음에는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총을 들고서 볼볼 기었습니다. 저는 가시울타리에서 여덟 달 즈음 살고서 ‘펀치볼’을 내려다보는 멧자락 싸움터로 내려왔는데, 그무렵에 한창 북녘 자맥배가 넘어온 탓에, 한 달 동안 움을 파고서 옴짝달싹 못 하는 나날이었어요. 얼추 쉰 날 즈음에 이르러서야 우리 싸움터로 돌아갔고, 지친 몸으로 발버둥(군사훈련)을 쳤습니다.


  땅개라는 이름을 받은 ‘육군 보병’은 늘 걷습니다. 발버둥을 쳐야 할 적에는 300킬로미터를 큰짐(완전군장)을 지고서 밤낮으로 걷습니다. 새벽부터 걷다가 한밤에 이르러 겨우 숲에 천막을 친 뒤 곯아떨어지는데, 밤에도 별지기 노릇을 합니다. 새벽에는 서리가 앉은 채 깨어나고, 숱한 멧등성이를 날마다 끝없이 오르내리다다 보면, 드디어 이레째 이른 걷기를 마치고, 우리 싸움터가 깃든 또다른 멧꼭대기로 꾸역꾸역 걸어갑니다. 다만 300킬로미터를 이레 사이에 못 채우면 며칠 더 걸어서 채워야 합니다.


  날마다 죽살이를 갈마드는 곳에서 1997년 12월 31일에 눈밭을 헤치면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시는 강원도 양구도 안 쳐다보겠노라 다짐한 이튿날부터 책집과 책숲에 파묻혔어요. 이태 남짓 바깥얘기를 하나도 들은 바 없으니, 책숲에서는 묵은 새뜸을 뒤적이고, 책집에서는 몇 해 사이에 나온 책을 들추었습니다. 이무렵에 《오래된 미래》를 처음 만납니다.


  갓 싸움터에서 벗어난 젊은이는 피식 웃었습니다. 라다크하고 우리나라는 다르거든요. 라다크 젊은이는 우리나라 젊은이처럼 ‘총알받이 땅개’로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내로 태어나더라도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으면 다 샛길로 빠져요. 돈도 이름도 힘도 없는 밑바닥 사내가 바로 쇠가시울타리 코앞으로 끌려가서 뒹굽니다.


  몇 해 지나서 다시 《오래된 미래》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이 들려주는 줄거리를 속속들이 짚거나 느낄 이웃이 얼마나 될는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부터 엉성합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곪거나 시들거나 앓는지 안다면, 얄궂은 일본말씨로 안 옮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웨덴 아줌마는 “스웨덴 어린이가 알아듣고 생각을 펼 만한 눈썰미로 글을 썼을” 텐데, 한글판은 “웬만큼 머리에 먹물이 깃들지 않고서야 알아먹을 수조차 없도록 망가뜨렸”습니다.


  라다크‘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라다크‘에서’ 배웁니다. 사람이라면 “아무개한테서 배운다”라 말하고, 어느 곳이라면 “시골에서 배운다”라 말합니다. 책이름을 “오래된 미래”라 했으나, 이 대목에서 ‘-된’은 군더더기입니다. “오랜 앞날”이나 “오랜 모레”쯤으로 붙여야 어울립니다.


  이러구러 《오래된 미래》에서도 다루는데, 우리가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어린이한테 높임말을 쓰게 마련입니다. 어린이한테 함부로 말을 놓는 이는 꼰대입니다. 나이가 적다고 여겨 말을 놓는 이들도 고약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말을 놓을 일도 까닭도 없”습니다. 어른은 누구한테나 말을 높입니다. 그리고 어른이라면, 나랑 믿음이 다르대서 손가락질을 안 합니다. 어른이라면, 내가 미는 이가 우두머리로 안 뽑혀도 저쪽을 삿대질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자리는, 어린이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상냥하게 나긋나긋 풀어내어 사랑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입니다. 비아냥이나 비웃음을 치는 무리는 그저 꼰대에 멍텅구리입니다. 이러면서 생각해 보아야지요. 모름지기 모든 집안은 엄마아빠랑 아이들 나이가 다 달라요. 다 다른 사람이 한집을 이루면서 사랑을 나누고 새롭게 배워요. 그런데 배움터나 일터는 거의 나이로 함부로 끊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어린이집이라는 데에 발을 딛자마자 ‘어울림’을 빼앗깁니다. 모든 나이가 함께 배우고, 모든 나이가 함께 이야기하고, 나아가 나이를 내려놓고서 마음으로 얼크러질 적에 비로소 ‘마을’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숲을 보셔요. ‘자연’이 아닌 숲을 보셔요. 바다를 보셔요. 하늘을 보셔요. 들을 보셔요. 들숲바다에서는 “크기도 나이도 힘도 이름도 돈도 안 따지는 어울림”만 있습니다. 크고작은 나무가 어우러집니다. 크고작은 풀꽃이 갈마들면서 피고 집니다. 오랜 앞날은 먼발치에 없습니다. 바로 우리 누구나 스스로 오래빛이요 오래꽃입니다. 스스로 잊은 씨앗을 돌아볼 노릇입니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하는 사랑으로 살림빛을 짓도록, 어리석은 싸움터(군대·전쟁)를 몽땅 걷어치울 노릇입니다. 총칼을 때려짓느라 애먼 돈을 들이붓는 바보짓을 멈출 일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배울 수 있기는 하되, 머리에 먹물만 집어넣을 적에는 오히려 시커멓게 갇히더군요.


ㅅㄴㄹ


나는 논쟁을 해결하는 사람이 관련된 당사자들과 잘 알고 있을 때에는 그들의 판단이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리어 이 친밀함이 그들이 더 공정하고 건전한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56쪽)


누구라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가 조르고 보채도 … 아이는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물어대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에 집중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예쉬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움켜잡을 때마다 부드럽게 그의 손을 떼어내며 “그건 책이야, 그건 책이야, 그건 책이야.” 하고 대답을 했다. 그는 계속 똑같이 조용한 어조로 그 말을 백 번은 했을 것이고, 나와는 달리 우리의 일에 정신을 집중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었다! (72쪽)


물질문화에 대해서 관광이 끼치는 영향은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다. (99쪽)


나이별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일은 학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의 동년배들끼리만 같이 지내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로 젊은이와 늙은이들 사이에 상호관용이 줄어든다 … 새로운 중앙집중의 구조속에서 일자리와 정치적 대표자를 위한 경쟁이 갈수록 라다크를 분열시키고 있다. 종족과 종교의 차이가 정치적 차원을 갖게 되었고, 전례없는 규모로 불행과 반목을 일으키고 있다. (134쪽)


개발과정이 라다크를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힘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162쪽)


라다크의 언어를 통해서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사회에 통합되었다. (176쪽)


문화적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이국적인 문화를 우리의 소비를 위해 꾸러미로 만들어 이용하고 상업화하는 것도 아니다. (188쪽)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중앙집중체제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189쪽)


+


생태적 마을(에코빌리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스웨덴을 휩쓸고 있다

→ 스웨덴은 푸른마을을 지으려는 바람이 분다

→ 스웨덴은 숲마을을 가꾸려는 바람이 불어댄다

196


사람들은 자연과의 보다 나은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 사람들은 숲과 얼크러지려고 한다

→ 사람들은 푸르게 어울리려고 한다

19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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