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창비시선 74
안도현 지음 / 창비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5.

노래책시렁 308


《모닥불》

 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5.5.



  지난 1989년에 읽던 노래를 1999년이나 2009년에 되읽을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1989년만 해도 집이나 마을이나 배움터에서 으레 주먹질이 판쳤고, 숱한 길잡이나 꼰대는 아이들을 마구 때리거나 막말을 일삼았어요. 이런 나라 얼거리가 예전 글자락에 고스란히 흐르는 줄 1989년에는 미처 몰랐으나, 2019년을 넘어서면서 새삼스레 보이더군요. 《모닥불》을 되읽다가 놀랐다고도 할 만하고, 썩 놀랍지 않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때에는 누구나 그랬다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아끼는 ‘꼰대 아닌 어른’은 있었어요. 어린이한테 함부로 말을 안 깎는 어진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가시내를 옆에 끼는 줄거리를 ‘시·소설’이란 이름으로 쓰는 분이 수두룩하고, 예전에는 으레 그런 글을 쓰다가 요새는 싹 감추는 글바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갈아엎어야 할는지 돌아봅니다. 우두머리나 벼슬꾼도 갈아엎어야 할 노릇이요, 바로 우리 스스로도 갈아엎을 일입니다. 지난날 얼룩도 갈아엎고, 글담도 이름값도 모조리 갈아엎어야지 싶어요. 지나간 글을 섣불리 ‘달콤(낭만)’으로 덮어씌울 수 없습니다. 창피한 어제를 뉘우치고서 다 내려놓지 않는다면, 모두 거짓이자 허울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아내를 남쪽에 두고 /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 부끄럼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 듯이 /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 온 바다로 파도 치는 /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청진 여자/7쪽)


젖은 손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로 / 마른 빵을 나누어 먹는 / 이 거칠은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 가난의 넉넉함이여 / 망둥어 피조개 꽃게가 퍼뜨리는 (군산선/14쪽)


김치 쉰내가 왁자그르 찰랑거리는 오후에 /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 내가 가면 아이들은 먼지처럼 / 무릎을 굽히면서 가라앉습니다 / 순종에 아주 길들여졌다는 뜻이겠지요 / 해서 언젠가 들려줄 고백이 있습니다 (그곳/54쪽)


도선장으로 가는 길 선술집에서 / 피조개 한점 고추장 찍어 먹고 나면 / 바깥을 겹겹이 둘러싸고 퍼붓는 눈발이 / 바로 우리 편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노여운 사랑이다 / 젖가슴까지 올려치는 강대국 전투기 / 그 비행사들 시커먼 폭격 속에 까무러치고 싶어한다는 / 썩을 년, 미국 가고 싶은 내 누이여 /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드디어 통일된 우리 조국 아니야 (군산행 1/87쪽)


+


《모닥불》(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더 깊이 새마을로

→ 더 깊이 새누리로

7쪽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순이, 이이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색시, 이녁과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아씨, 그대와 하룻밤 자고 싶다

7쪽


대명천지에 똥차는 와서 진정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대낮에 와서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낮에 와서 참일 가르쳐 주고 간다

28쪽


고관의 저택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 나리 큰집에도 수챗길은 흐른다

→ 벼슬꾼 집에도 밑물은 흐른다

29쪽


내 지금 발 딛고 선 교단이 세계의 중심임을

→ 내 오늘 발 디딘 배움턱이 온누리 복판이니

→ 내 이제 선 배움터가 푸른별 한복판이니

35쪽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나라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멧숲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들숲입니다

52쪽


어느덧 가투가 시작되고 있어싸

→ 어느덧 길너울이야

→ 어느덧 길물결이야

84쪽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저 함박눈 바다를 보아라

→ 저 눈보라 바다를 보아라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