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설 내가 좋아하는 것들 11
김슬기 지음 / 스토리닷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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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18.

인문책시렁 318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설》

 김슬기

 스토리닷

 2023.10.31.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설》(김슬기, 스토리닷, 2023)을 읽었고, 덮었습니다. 열아홉 살까지는 ‘소설’이라는 이름인 글을 읽었으나, 스무 살부터는 등졌습니다. 마흔 살이 훌쩍 넘어서 다시 몇 자락을 읽기는 했으나, 영 손이 안 갑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숱한 글자락은 “삶을 담는 글”이라기보다 “삶이 미운 글”에 쏠려요. “삶을 짓는 꿈을 그리는 글”이 아닌 “삶은 굴레라고 쏘아대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막장 연속극’하고 소설은 나란합니다. 둘은 늘 한동아리 같아요.


  요즈막에는 ‘수필’이라는 이름인 글마저 “삶을 풀어내면서 스스로 마음을 푸근하게 품는 글”이 아닌 “삶이 괴롭다고 미워하면서 가르고 싸우고 쪼개는 굴레”로 치닫습니다. 여기에 ‘시’라는 이름인 글은 “삶에 가락을 입혀 나누는 노래”가 아닌 “삶을 저버린 채 꾸미고 덧씌우고 자르는 글장난”에 갇힙니다.


  낱말책을 짓는 일을 하니, 어느 갈래 어느 글이건 아무튼 읽기는 하되, 소설이라는 글은 마음도 말도 마을도 꽁꽁 뭉개는 얼거리가 넘쳐나기에, 글쓴이부터 스스로 수렁에 잠길 뿐 아니라, 읽는이도 덩달아 쇠고랑을 차야 하는 듯싶기까지 합니다. 언제부터 소설이라는 글은 이렇게 바닥을 칠까요?


  어느 모로 보면, 글을 쓰면서 ‘글쓰기’라 안 하고 ‘문학 창작’이라고 씌우면서 망가지는 지름길로 접어들지 싶습니다. 글이란, 말을 담은 그림이자 무늬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마음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글이건 말이건, 마음이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인데, 글을 글이라 않고 ‘소설’이나 ‘수필’이나 ‘시’라고 하면서 다 뒤집혔구나 싶어요.


  말이란,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이 없이, 그저 삶을 누리는 마음을 담아낸 소리일 뿐입니다. 말을 옮기는 글도, 삶이라는 이야기를 간추려서 담는 글도, 언제나 좋은 줄거리나 나쁜 줄거리가 없습니다. 쥐어짜거나 뚝딱거리거나 짜맞출 적에는 삐걱거릴밖에 없어요.


  서울살이를 쓰든, 시골살이를 쓰든, 웃음살이를 쓰든, 눈물살이를 쓰든, 가시밭길을 쓰든, 꽃길을 쓰든, 꾸미지 않으면 됩니다. 고스란히 쓰면 넉넉합니다. 아픈 삶이니 아프게 눈물을 흘린 그대로 쓰면 됩니다. 기쁜 삶이니 기쁘게 웃음을 터뜨린 그대로 쓰면 돼요. 이러면서 언제나 꿈과 사랑과 숲을 바탕에 놓을 줄 아는 눈썰미라야, 비로소 글이요 말이 빛날 테지요.


ㅅㄴㄹ


소설을 읽고, 더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쓴다. 그러다 보니 일기 쓰기도 달라졌다. 암호처럼 쓰던 일기가 솔직해졌다. 더 수다스러워졌다.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여기며 마음에서 지우기 급급했던 생각들도 귀하게 기록한다. (28쪽)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몰랐다. (43쪽)


1만 2천 원 하는 책을 판다는 건, 이토록 무덥고, 부끄럽고 또 애타는 일이구나. 글을 쓸 때 몰랐던 것들을 …… (61쪽)


+


손바닥을 바지 위에 비벼댔다

→ 손바닥을 바지에 비벼댔다

21쪽


소설 쓰고 앉아 있다

→ 이야기 쓰고 앉았다

22쪽


누군가는 겨울에 굶어 죽고야 마는 베짱이라며

→ 누구는 겨울에 굶어죽고야 마는 베짱이라며

22쪽


8차선 위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는 것과 같다

→ 여덟길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는 셈이다

23쪽


대망의 질문 시간

→ 기다린 물음틈

→ 바라던 이야기

→ 손꼽은 얘기꽃

27쪽


C조, 준비, 땅!

→ 셋째, 자, 가!

31뽇


대충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추측할 뿐이었다

→ 얼추 헤아릴 뿐이다

→ 그냥 어림할 뿐이다

→ 그냥 짚어 본다

32쪽


초보 습작생이었던 내겐

→ 풋내기이던 내겐

→ 풋글을 쓰던 내겐

33쪽


인생의 숙제를 덜 한 것만 같은 찜찜한 마음이 커지면

→ 살아가는 짐을 덜 한 듯해 더 찜찜하면

→ 삶이라는 길을 덜 간 듯해 확 찜찜하면

44쪽


친한 언니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 가까운 언니와 밥먹는 자리에서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45쪽


소설을 좋아하는 충실한 독자로만 남고 싶은

→ 글꽃을 좋아하는 이로만 남고 싶은

→ 글꽃을 즐겨읽기만 하고 싶은

55쪽


노트북을 여닫는 사이 영영 글 쓰는 일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을 문장들을 만난다

→ 무릎셈틀을 여닫는 사이 끝내 글 쓰는 일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을 글을 만난다

58쪽


나는 저항군처럼 역행한다

→ 나는 거스른다

→ 나는 맞선다

64쪽


내가 불안에 천하무적인 긍정맨일까

→ 내가 걱정을 다 이기는 웃음이일까

→ 내가 근심을 안 두려운 활짝이일까

69쪽


한 장 분량의 아주 짧은 소설(엽편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 한 쪽짜리 잎글을 쓴다

→ 한 바닥짜리 잎새글을 쓴다

75쪽


반짝반짝 잘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반짝반짝 잘하는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

77쪽


엄마의 말은 희한하게 내 마음의 급소 어딘가를 정확히 파고들어 치명타를 날리곤 한다

→ 엄마는 남달리 내 덜미 어디를 확 파고들어 주먹을 날리곤 한다

→ 엄마는 뜬금없이 내 마음 복판을 훅 파고들어 뻥 날리곤 한다

→ 엄마는 놀랍게 내 명치를 똑똑히 파고들어 모질게 날리곤 한다

79쪽


평범한 이야기였던 것이 MSG가 잔뜩 가미되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어갔다

→ 수수한 이야기에 가게앙념을 잔뜩 넣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갔다

81쪽


냉장고는 온갖 곰팡이들을 배양하는 실험실이 됐다

→ 싱싱칸은 온갖 곰팡이를 키워 두는 곳이 됐다

104쪽


달콤한 떡볶이는 완벽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다

→ 달콤한 떡볶이는 어쩔 길 없다

→ 달콤한 떡볶이는 사랑이다

→ 달콤한 떡볶이는 안 먹고 못 산다

→ 달콤한 떡볶이는 홀린다

→ 달콤한 떡볶이는 사로잡는다

→ 달콤한 떡볶이는 죽인다

142쪽


정리만 되면 내려갈 거야

→ 추스르면 가

→ 다스리면 가

→ 다독이면 가

19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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