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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ㅣ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8.
노래책시렁 395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정현우
창비
2021.1.15.
어린이는 아직 말을 다 알지 않으니, 으레 틀리고 바로 고치고, 다시 어긋나다가 또 추스르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읽고 배웁니다. 이와 달리 숱한 어른은 아직 말을 잘 알지 않으나, 도무지 말을 배우려는 마음을 안 일으키더군요. 우리가 쓰는 말은 한낱 소리이지 않습니다. 모든 말은 마음입니다. 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또 나이가 든 뒤로도 꾸준히 말을 익히지 않는다면,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우리 마음도 등돌리는 셈입니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처럼 ‘-에게·-한테’를 잘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노래에 적는 말씨라서 넘어가도 되지 않습니다. 글쓴이가 놓치면 엮는이가 짚어서 알려줘야지요. “나는 천사한테 줍니”다. “나는 천사한테서 받습니”다. “나는 천사한테 갑니”다. “나는 저쪽에서 옵니”다. ‘가르치다·주다’는 ‘가다’이니 ‘-한테·-에게’를 붙입니다.‘배우다·받다’는 ‘오다’이니 ‘-서·-한테서’를 붙입니다. 아이들처럼 ‘틀린말’이어도 요조모조 재미나게 말놀이를 해보며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만, 따로 꾸러미로 여미는 이야기라면 말재주가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차근차근 갈무리하고 갈피를 잡을 일이지 싶어요. 가는지 오는지 읽어야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ㅅㄴㄹ
꿈속의 잠을 벗겨내면 나무들의 흉터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가슴이 숭숭 뚫린 몸의 껍질, 햇볕에 마른 주둥이, 바스락대는 몸을 줍는다. (꿈갈피/28쪽)
나의 아홉살은 얼음 감옥. / 쌀은 씻어도 묵은 냄새가 났다. // 엄마, 사람에게도 겨울잠이 있으면 좋겠어요. / 사람이 어는 점을 알고 싶어요. / 지루한 속도는 언제 떨어질까. (빙점/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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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정현우, 창비, 2021)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 사람은 비틀린 바닷바람
→ 사람은 넝쿨진 바닷바람
10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서지 않는 이 울타리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세우지 못 하는 이 담에서
16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 나는 빛한테서 말을 배웠다
→ 나는 별한테서 말을 배웠다
18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 가지런하지만 마구 틀리는 곳
→ 고르지만 어긋나서 날뛰는 곳
21
두 눈은 울기 위해 만들어졌지
→ 두 눈은 울려고 있지
→ 두 눈은 울려고 생겼지
23
이팝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밑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곁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둘레서 재채기를 하면
27
읽히지 않는 당신을 붙들고, 나는 틈과 틈 사이를 다닌다
→ 읽히지 않는 너를 붙들고, 나는 틈과 틈을 다닌다
→ 읽히지 않는 자네를 붙들고, 나는 틈새를 다닌다
40
물고기의 귀는 어디에 달린 걸까
→ 헤엄이는 귀가 어디 달렸을까
61
거미의 귀는 바람이 가진 선 속에 있을 것
→ 거미는 귀가 바람금에 있다
→ 거미는 귀가 바람줄에 있다
61
벌목된 숲, 식물들이 새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 베어낸 숲, 풀이 새발목을 움켜잡는다
69
과육을 도려내듯
→ 살점을 도려내듯
→ 살을 도려내듯
10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