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책이라는 2023.12.9.흙.
종이로 묶는다고 다 ‘책’이 아닐 테지? 글이나 그림을 묶기에 모두 ‘책’이지 않겠지? 줄거리가 있는 글·그림·사진을 엮으면 ‘책’일까? 생각해 보렴. 모든 곳에는 ‘오늘 하루’가 있어. 이 ‘오늘’하고 ‘하루’를 맞아들이고 치르기에 ‘삶’이 피어나지. 이 ‘삶’이란 ‘줄거리’야. 살아가는 길을 되새기며 자라는 줄거리란다. 그러나 줄거리(내용·콘텐츠·지식·정보)에서 그치면 쳇바퀴야. 너희가 날마다 내놓는 신문·방송에 영상·영화는 아직 ‘줄거리’일 뿐이란다. 이 줄거리를 많이 알거나 뭉쳐 놓는다면, 그저 무겁게 대롱거리는 ‘혹’이겠지. ‘책’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삶을 잇는 길을 열 노릇이야. 어제를 오늘로 잇고 모레로 새로 이어 스스로 일어서는 마음이 있을 적에 ‘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 그러니까 ‘이야기’로 가야지. 고이는 말이 아닌, 가두는 말이 아닌,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깨어나는 ‘이야기’로 갈 적에 ‘책’일 수 있어. ‘책’은, 이야기를 담지. 이야기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풀어낼 수 있고, 따로 종이가 아닌 마음에 심는 말씨앗으로 여밀 수 있어. ‘밥을 짓는 살림’과 ‘집을 짓는 일손’과 ‘옷을 짓는 하루’와 ‘새와 만나는 노래’와 ‘흙을 돌보는 손’과 ‘바람을 읽는 눈’도 언제나 책이지. 종이꾸러미만 책이지 않아. 오히려 숱한 종이꾸러미는 사람들 눈길·마음·손길·몸짓을 가두거나 길들이는 굴레나 담벼락이기도 해. 참답게 책이라면, ‘책’은 한결같이 이어가. 종이꾸러미를 불사르건 꽁꽁 숨기건, ‘참답게 책’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읽고 배우고 느끼지. 너희가 ‘살덩이’ 아닌 ‘빛’이라는 넋이듯, 너희가 품고 이어가는 책은 ‘빛발’을 이룬단다. 햇빛이나 별빛을 없앨 수 없겠지? 참빛일 적에 비로소 말이요, 이야기요, 책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