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로봇 인권선언 : 누구나 몫을 누리기에 목숨이다. 흙하고 모래한테도, 빗물하고 바닷물하고 이슬한테도, 개미하고 벌하고 지렁이한테도 몫이 있다. 사람들이 서로 빼앗거나 다투거나 겨루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얼거리를 들여다보노라면, 이웃몫을 안 보는 얕은 마음이 도사린다. 요즈막에 ‘짐승몫(동물권)’을 말하는 분이 꽤 있다. 고기밥은 꺼리면서 풀밥을 먹는다는 분이 늘어난다. 그러면 ‘푸나무몫(식물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물고기’가 아닌 ‘헤엄이’로 여길 줄 안다면, 풀이라고 해서 함부로 밥으로만 삼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풀한테까지 몫을 챙겨 줄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짐승몫을 어떻게 왜 따지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고깃살 한 젓가락하고 풀잎 하나도 똑같은 숨결이다. 고기밥을 누리든 풀밥을 누리든, 우리한테 밥이 되어 준 모든 숨결한테 고개숙이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사람이리라 본다. 예부터 숲에서 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 적에 그냥 나무베기를 하지 않았다. 베려고 하는 나무한테 한참 절을 한다. 나무한테 오래오래 말을 걸었다. “그동안 이 숲에서 자라 주어 고마워. 네 몸으로 집을 지을게. 네 씨앗이 이곳에서 새롭게 싹터서 새나무로 자라도록 힘쓸게.” 하고 속삭이고 다시 속삭여서 나무가 받아들이고 난 뒤에라야 나무를 베었다. 풀밥을 먹을 적이든 고기밥을 먹을 적이든, 뭇숨결한테 고개숙이는 고즈넉한 마음부터 다스릴 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하루라면, ‘돌사람몫(로봇 인권)’을 헤아릴 수 있겠지. 테즈카 오사무 님은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그림꽃을 1950년대부터 그렸는데, 이 그림꽃에 ‘로봇 인권선언’을 담았다. 우리는 1950년이나 1960년에 ‘로봇 인권선언’은커녕 ‘나무 인권선언’은커녕 ‘헤엄이 인권선언’은커녕 ‘사람 인권선언’조차 밝히지 못 했다. 2020년을 넘었으나 아직 ‘사람 인권선언’조차 제대로 못 선다. ‘어린이몫’도 ‘어른몫’도, 무엇보다 ‘사람몫’마저 아직 까마득하다. ‘시골몫’이나 ‘숲몫’이나 ‘바다몫’을 헤아리는 이웃은 몇이나 될까? 내 목아지가 대수롭듯, 네 목아지가 대수롭다. 사람 목숨마다 값이 있듯, 푸나무와 숲짐승과 헤엄이와 모든 숨결한테도 값이 있다. 2021.12.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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