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칠천 원 사십편시선 17
조영옥 지음 / 작은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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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15.

노래책시렁 379


《일만칠천 원》

 조영옥

 작은숲

 2015.6.1.



  비는 서둘러 내리지 않습니다. 구름은 서둘러 흐르지 않습니다. 바람도 해도 서둘러 움직이지 않습니다. 와락 쏟아지는 비가 있고, 드센바람을 타고서 빠르게 달리는 듯한 구름이 있지만, 해바람비는 언제나 철빛을 살리면서 찾아듭니다. 아기는 빨리 자라야 할 까닭이 없고, 어린이는 빨리 배워야 하지 않으며, 어른은 빨리 죽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여러 고장을 잇는 빠른길을 놓을 수 있되, 마을하고 마을 사이는 느슨하면서 넉넉히 오갈 길을 놓아야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일만칠천 원》을 읽다가 자꾸 갸웃했습니다. 꼭 ‘시’를 써내야 하지 않습니다. 꼭 뭔가 새롭다고 여길 하루를 맛보거나 겪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느슨히 하루를 살피면서, 더 천천히 삶빛을 그대로 삶말로 담으면 됩니다. 굳이 멀리 가야 해를 볼 수 있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골목에서도, 나무 곁에서도 해를 봅니다. 밤에 불빛으로 따가우면 별을 못 보겠지요. 그런데 서울 한복판조차 눈을 가만히 감고서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면 ‘감은 눈’으로도 별을 만납니다. 노래란, 대단해야 하지 않되, 언제나 삶을 사랑하는 말씨입니다. 그저 오늘을 기쁘게 바라보고 맞이하면서 말씨앗을 얹으면 노래로 피어납니다. 이곳에서 노래씨앗을 찾아보기를 바라요.


ㅅㄴㄹ


해 지는 와온바다 본다며 / 서쪽으로 서쪽으로 차를 달려 / 와온바다에 왔다 / 먼 수평선 위 /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잦아들고 (와온바다/21쪽)


땅콩을 심었다 / 퇴비 뿌리고 / 흙 한번 뒤집어 주고 / 한 알 한 알 꼭꼭 / 숨겼더니 / 앙증맞게 옹기종기 모인 / 푸른 잎 / 진노랑꽃까지 피우더니 / 가을이 채 오기 전 / 주렁주렁 땅콩이 열렸다 (땅콩 캐는 날/28쪽)


+


《일만칠천 원》(조영옥, 작은숲, 2015)


먼 수평선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 먼 물금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 먼 바다금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21쪽


진노랑꽃까지 피우더니

→ 짙노랑꽃까지 피우더니

28쪽


퇴비 뿌리고 흙 한번 뒤집고

→ 거름 뿌리고 흙 한벌 뒤집고

28쪽


하얀 종이 위에 파란색 글씨를 쓴다

→ 하얀 종이에 파란 글씨를 쓴다

45쪽


江은 나의 몸으로 스며든다

→ 냇물은 내 몸으로 스며든다

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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