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거처 황금알 시인선 95
류인채 지음 / 황금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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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

노래책시렁 300


《소리의 거처》

 류인채

 황금알

 2014.10.31.



  글을 머리로 쓰다가는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말을 담은 그림인 글은 말결을 살려서 써야 비로소 마음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말이란 “그냥 소리”가 아닌 “마음을 알려서 나누는 소리”이거든요. 그러니까 말만 옮긴대서 글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소리인 말’을 그려야 비로소 글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짓는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쳇바퀴처럼 보내는 나날을 그냥그냥 담으면 ‘쳇바퀴나 굴레인 마음’이요, 모든 나날이 새롭고 다른 줄 느끼며 하루를 짓는다면 ‘언제나 빛나는 마음’입니다. 《소리의 거처》를 읽었습니다. “소리의 거처”라는 이름부터 멋이나 치레나 꾸밈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우리말에 담는 길을 언제 열 수 있을까요? 말이며 소리가 간 곳을 살피지 않으면, 말하고 소리가 머무는 자리를 보지 않으면, 소리자리나 소리밭이나 소리터를 읽지 않으면, 으레 하늘에 덩그러니 떠서 맴돌겠지요. 삶을 써야만 글을 이루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다 다르게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는 살림지기로서 오늘을 노래하고 춤출 노릇입니다. 이때에는 말이며 글이 저절로 쏟아져서 이야기가 하나하나 태어나거든요. 새롭게 하루를 사랑하는 살림손이라면 어떤 글을 써도 노래이되, 살림손이 아니면 겉치레입니다.


ㅅㄴㄹ


지렁이 한 마리 오후 2시의 보도블록 위를 기어간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앞을 간다 장마통에 집 나온 저 벌거숭이 봉사 간다 바로 앞이 차도인 줄도 모르고 개미가 새까맣게 몰려오는 소리도 못 듣고. (캄캄한 대낮/37쪽)


어딘가에 잠복했던 기억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들린다 수많은 기억의 동굴로 바람이 들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과부하 된 기억들이 썰물처럼 쓸려나간 자리에 (엎질러지다/86쪽)


+


《소리의 거처》(류인채, 황금알, 2014)


황사 마스크가 공원을 걷습니다

→ 모래 가리개가 쉼터를 걷습니다

17쪽


오후 2시의 보도블록 위를 기어간다

→ 낮 2각단 거님길을 기어간다

→ 낮 2눈금 돌바닥을 기어간다

37쪽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37쪽


바로 앞이 차도인 줄도 모르고

→ 바로 앞이 길인 줄도 모르고

→ 바로 앞이 한길인 줄도 모르고

37쪽


중년의 사내, 싸락눈을 배경으로 곤히 잠들었네

→ 아저씨, 싸락눈을 뒤로 깊이 잠들었네

→ 아재, 싸락눈 오는데 고단히 잠들었네

43쪽


풍년가를 부르며 혼자

→ 넘실노래 부르며 혼자

→ 푸짐노래 푸르며 혼자

43쪽


하얀 그녀의 귓볼을 핥았다

→ 하얀 그사람 귓볼을 핥았다

→ 하얀 귓볼을 핥았다

65쪽


어딘가에 잠복했던 기억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 어딘가에 숨은 이야기가 툭툭 끊어지는 소리

→ 어딘가에 잠든 생각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

86쪽


과부하 된 기억들이 썰물처럼 쓸려나간 자리에

→ 넘치는 생각이 썰물로 빈 자리에

→ 벅찬 이야기가 쓸려나간 자리에

86쪽


늦은 문상객들이 돌아갔다

→ 늦은 보듬손님 돌아갔다

→ 늦은 비나리손 돌아갔다

102쪽


향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 불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 내도 끝까지 몸을 사른다

102쪽


천지 사방은 고요하고

→ 둘레는 고요하고

→ 모두 고요하고

102쪽


태연하게 두 발로 허공을 딛고

→ 멀쩡하게 두 발로 하늘을 딛고

→ 가만히 두 발로 바람을 딛고

106쪽


무보수의 노동을 견디고 있다

→ 값없이 일을 견딘다

→ 그냥 일살림을 견딘다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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