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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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865


《기형도 산문집》

 기형도 글

 살림

 1990.3.1.



  열다섯 살 무렵 글벗(펜팔)을 사귀는데, 서로 얼굴을 보고 싶다고 느껴, 인천에서 안산으로 이따금 찾아갔습니다. 종이에 글로는 주절주절 썼지만, 막상 입을 열어 말을 틔우기란 어렵더군요. 글월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만큼 ‘곁에 두는 책’을 얘기했고, ‘기형도’ 글을 읽어 보았느냐 묻는 말에, 나중에 책집에 가서 읽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형도 산문집》을 처음 만나는데, 영 뭔 글을 풀어내려는지 종잡기 어려운 술타령 같았어요. 푸름이라서 혼자 먼마실을 다닌 적이 없기도 하기에, ‘서울내기(서울에서 살며 일한) 기형도’ 씨가 전라남도 여러 고장을 퀴퀴하거나 추레한 곳으로 그린 글은 참 거북했어요. 인천 〈대한서림〉에서 읽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이분은 인천·부산·대전도 초라하다고 느껴 숨막힐 마음이겠더군요. 서울로 돌아가서야 시원하게 숨통이 트인다는 글자락을 읽고는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마을인걸요. 누구나 다르게 하루를 짓는걸요. 서슬퍼런 ‘전두환 총칼나라’에서 정호승 씨는 월간조선 기자였고, 기형도 씨는 중앙일보 기자였습니다. 이런 분들이 남긴 글을 어떻게 읽을 적에 우리 스스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까요? 우리는 ‘서울로(in Seoul)’를 해야 할까요?


ㅅㄴㄹ


+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


그녀는 이제 열 살 국민학교 4학년인데

→ 아이는 열 살 어린배움터 넉걸음인데

→ 이제 열 살 씨앗배움터 넉걸음인데

28쪽


순천의 야경은 쓸쓸하고 부랑자의 그것이었다

→ 순천은 밤빛이 쓸쓸하고 떠돌이 같았다

→ 순천 밤하늘은 쓸쓸하고 나그네 같았다

→ 순천 불빛은 쓸쓸하고 뜨내기 같았다

36쪽


그들을 속물근성으로 몰아부친 것은 나의 이기(利己)이다

→ 나는 그들을 멋대로 돈벌레로 몰아붙였다

→ 나는 그들을 함부로 바보라고 몰아붙였다

64쪽


그녀는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중심으로 잡으려 주춤거리며 승강구로 가더니

→ 그이는 따라새처럼 말하며 가운데를 잡으려 주춤거리며 어귀로 가더니

→ 아가씨는 내 말을 따라하며 밑동을 잡으려 주춤거리며 들머리로 가더니

67쪽


지금 추억만으로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상현달 같은 여자

→ 이제 옛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달 같은 님

→ 오늘 곱씹기만 해도 너끈히 사랑할 수 있는 오른달 같은 빛

79쪽


나는 사내의 유도심문에 빠져드는 듯한 생각이 든다

→ 나는 사내가 꼬드기는 대로 빠져들었다고 느낀다

→ 나는 사내가 홀리는 대로 빠져들었다고 생각한다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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