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7시간 : 쇳덩이(자가용)를 모는 이웃님이 고흥에서 여수를 이튿날 다녀오신다기에 슬쩍 여쭙는다. “얼마나 걸리시나요?” “나는 한 40분쯤?” 택시라면 30분쯤 걸릴 테고, 빨리 몬다면 20분에라도 가리라. 그런데 ‘대중교통’으로 고흥·여수 사이를 오갈 적에는 7시간이 든다. 읍내로 나가고, 읍내에서 기다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여수에서 다시 기다리고, 고흥으로 돌아오고, 또 기다린 끝에 시골버스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차근차근 짚어 보았다. 고흥·여수 사이를 버스로 오간 적이 없다면 이렇게 걸리는 줄 모르리라.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길’이 매우 허접하다. 모두 쇳덩이(자가용)한테 맞출 뿐 사람한테는 안 맞춘다. 길을 느끼거나 알지 않는 채 쇳덩이에만 몸을 싣는다면, 어린이나 푸름이나 할매할배가 어떤 길인지 모르겠지. 길을 모른다면 글도 모르겠지. 길도 글도 모른다면 말도 모를 테고, 말을 모른다면 넋이나 마음을 알 턱이 있을까. 2023.11.1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