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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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3.11.13.


다듬읽기 117


《책과 우연들》

 김초엽

 열림원

 2022.9.26.



《책과 우연들》(김초엽, 열림원, 2022)을 읽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전에는 글발로 이름을 날렸다는 분들이 쓴 글은 ‘잡문’을 쓴다고 할 적에도 정갈하게 가다듬으려는 손길을 느꼈으나, 이제는 글발이며 이름값을 날린다고 하는 분들이 쓰는 ‘수수글(수수하게 삶을 적는 글, 삶글)’이 너무 허울스럽게 글치레에 글멋에 글발림입니다. 빈수레가 시끄럽다는 말처럼, 빈말이요 빈글이로구나 싶어요. 왜 자꾸 멋을 부리면서 꾸밀까요? 글을 꾸미는 사람은 말부터 꾸밉니다. 말을 꾸미는 사람은 겉모습과 옷차림을 꾸밉니다. 매무새(태도)를 번듯하게 꾸미고, 줄을 잘 서더군요. 글로 돈을 벌기에 나쁠 까닭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글로 돈·이름·힘을 몽땅 거머쥐려 하면서 점잖은 척 가난팔이를 하거나 왼팔이(진보팔이)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낙엽을 태우며” 따위 글을 쓰던 옛 글바치는 눈속임을 하지 않고, 그들이 얼마나 배불리 잘사는가를 ‘우리말답게’ 추슬러서 다 드러냈습니다.


ㅅㄴㄹ


+


반드시 개봉일에 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 반드시 첫날 봐야 한다

→ 반드시 첫단추에 봐야 한다

→ 반드시 첫맞이에 봐야 한다

7쪽


두 달이나 개봉이 늦은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 두 달이나 늦게 걸어 마음에 안 드는데

→ 두 달이나 늦게 올려 마음에 안 드는데

7쪽


장난감들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 장난감은 고비를 맞는다

→ 장난감은 아슬하다

→ 장난감은 벼랑길이다

8쪽


거의 자정이었다

→ 거의 밤이다

→ 거의 한밤이다

8쪽


그건 아마 형식조차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무언가였을 것이다

→ 아마 겉모습조차 또렷하지 않고 붕뜬 무엇이었다

→ 아마 얼거리조차 똑똑하지 않고 허울뿐이었다

→ 아마 틀조차 제대로 없이 빈껍데기였다

9쪽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 이야기를 왜 쓸까

→ 이야기를 무엇 때문에 쓸까

9쪽


내일의 피로는 예정되어 있지만 마음은 행복감으로 차 있었다

→ 이튿날은 고단하겠지만 마음은 즐겁다

→ 다음날은 고될 테지만 마음은 기쁘다

9쪽


그 기분, 그것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나의 쓰고 싶다는 마음 중심에 있다

→ 나는 이 마음을 살려서 쓰고 싶다

→ 나는 이런 마음을 글로 살리고 싶다

9쪽


조그만 취향의 원 안에서 빙빙 돌며 좋아하는 것들만 좋아하던 편협한 독자였다

→ 조그만 울타리에서 빙빙 돌며 좋아하는 글만 좋아해 왔다

→ 조그맣게 맴돌며 좋아하는 글만 읽어 왔다

→ 좁게 빙빙 돌며 좋아하는 글만 읽었다

10쪽


처음에는 현실도피처럼 책을 읽었다

→ 처음에는 달아나듯 책을 읽었다

→ 처음에는 눈감듯 책을 읽었다

→ 처음에는 모르는 척 책을 읽었다

→ 처음에는 등지며 책을 읽었다

10쪽


읽기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나의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낸다

→ 읽으며 품을 넓히고,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낸다

→ 읽기에 눈을 키우고,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낸다

10쪽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다

→ 예전과 달랐다

→ 지난날과 다르더라

10쪽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했지만 그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겪어 본 이들에게

→ 일을 새롭게 하지만 미처 추스르지 않았다고 여겨 두려운 이한테

→ 새롭게 나아가지만 아직 덜되었다고 여겨 두려운 이한테

11쪽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한 순간들이 때로는

→ 깨끗하지 않은 뜻으로 그런 때가 문득문득

→ 참하지 않은 그런 자리가 얼핏얼핏

11쪽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 뜻밖인 날을 여기에 살짝 펼쳐놓는다

→ 얼핏 스친 하루를 여기에 슬쩍 펼쳐놓는다

→ 갑작스럽던 때를 여기에 가만히 펼쳐놓는다

11쪽


잠들기 전마다 곰팡이에 대한 책을 읽었다

→ 잠들기 앞서 곰팡이 책을 읽었다

→ 잠자리마다 곰팡이 책을 읽었다

17쪽


독서노트를 따로 만들어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 책하루꽃을 따로 마련해 글을 옮겨적었다

→ 책글담이를 따로 두어 글을 옮겨적었다

17쪽


정해진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 따로 다니지 않는 나래일꾼한테

→ 일터를 오가지 않는 바람꽃한테

17쪽


곰팡이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를 써 봐야지 마음먹던 차에

→ 곰팡이가 온누리를 쥐는 이야기를 써 봐야지 마음먹었는데

19쪽


모든 소설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일까

→ 모든 글은 사람 이야기일까

23쪽


약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 조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어림할 수 있다

→ 살짝 어렵지만 헤아릴 수 있다

25쪽


주전자 물 끓는 소리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인간 독자에게도 넌지시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쟁개비 끓는 소리로 무슨 말을 나누는지 사람한테도 넌지시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 가마 끓는 소리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사람한테도 넌지시 알려주고 싶은 듯싶다

→ 물동이 끓는 소리로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한테도 넌지시 알려주고 싶은 듯하다

25쪽


그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 그들은 어떤 빛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짚을 수 있다

25쪽


그럼에도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가슴 벅차게 설레는 이들이라면

→ 그러나 우리가 그리고 느끼는 곳 바깥에 숱한 삶이 있어 가슴 벅찬 이라면

→ 다만 우리가 헤아리고 알아보는 누리 너머에 가없는 길이 있어 설레는 이라면

27쪽

.

.

글손질이 끝도 없어

여기에서 멈춘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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