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문학동네포에지 45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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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13.

노래책시렁 376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2.15.



  살아가는 ‘길’은 고스란히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가는 길을 그대로 담습니다. 걷는 사람은 걷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쇳덩이(자동차)에 몸을 싣는 사람은 쇳덩이 마음으로 흘러갑니다. 이곳으로 가기에 좋지 않고, 저곳으로 가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다 바꿀 수 있어요. 늘 쇳덩이를 몰더라도 언제나 반짝반짝 아름눈길일 수 있고, 쇳덩이를 조금 몰거나 탈 뿐이지만 길든 굴레나 수렁에 확 잠길 수 있어요. 언제 어디에서나 반짝이는 별빛이라는 길이라면, 별빛마음이에요. 그러나 둘레에 사로잡히거나 휩쓸리는 길이라면, ‘길들면서 길든 줄 모르는 넋잃는 마음’입니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읽으면, 노래님 스스로 얼마나 아픈가를 사뭇 느낄 만합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앓는 일은 안 나쁩니다. 우리는 아프거나 앓기에 알아갑니다. ‘아프다·앓다’하고 ‘알다·알·알차다’는 말밑이 같아요. 아프거나 앓지 않는 이는 알아가지 않아요. 아픈 적 없는 이는 알에서 안 깹니다. 흠씬 앓기에 온누리를 알아보는 눈을 새롭게 뜹니다. 허수경 님이 알에서 스스로 깨어나려고 앓던 길에, 조금씩 가장자리로 걸어갔다면, 모든 끝이란 늘 처음인 줄 알아차렸을 텐데 싶더군요.


ㅅㄴㄹ


장님인 시절 장님의 시절 술 마시는 곳 기웃거리며 술병 깨고 손에 피를 흘리며 여관에서 혼자 잠, 여관 들어선 자리 밑 미나리꽝 맑은 미나리순이 걸어들어와 저의 손으로 내 이마를 만지다. (아픔은 아픔을 몰아내고 기쁨은 기쁨을 밀어내지만/10쪽)


덜 자란 아이들은 언제나 덜 자라 이 거리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아이들의 가슴에 든 지폐는 영혼을 팔아 바다를 사고 적막한 눈을 감고 바다는 오 오 거리에서 팔던 오뎅국물처럼 졸아든다.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16쪽)


먼 곳에서 벌어진 전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 모깃불을 안고 퍼런 전파를 보다가 진짜 전장으로 가버린 남자들 / 남자들을 따라 전장으로 나간 여자들은 옷을 벗고 춤을 추었다 / 춤을 추다가 가끔 아편을 맞기도 했다 (검은 노래/47쪽)


+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


어느 날 죽은 이의 결혼식을 보러 갔지요

→ 어느 날 죽은 이 꽃잔치를 보러 갔지요

8쪽


자궁만이 튼튼한 신부는 신랑의 심장자리에 자신을 밀어넣었습니다

→ 아기집만이 튼튼한 각시는 곁님 가슴자리에 저를 밀어넣었습니다

→ 알집만이 튼튼한 꽃짝은 곁짝 마음자리에 저를 밀어넣었습니다

8쪽


새들은 아직 심장을 가지고 있나

→ 새는 아직 가슴이 있나

→ 새는 아직 마음이 있나

12쪽


날아오르는 것들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 날아오르는 모두를 믿을 수 없듯

→ 날아오르는 아이를 믿을 수 없듯

→ 날아오르는 빛을 믿을 수 없듯

12쪽


자전하는 지구에서 태어난 나

→ 맴도는 별에서 태어난 나

→ 쳇바퀴 별에서 태어난 나

→ 스스로도는 별에서 태어난 나

13쪽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 늙은 노래꾼은 나눔잔치 열고 자리에서

22쪽


미라들이 박물관 지하에 있다

→ 덧주검이 살림숲 땅밑에 있다

33쪽


집 앞에 고물상이 있네

→ 집 앞에 넝마집이 있네

→ 집 앞에 마병집이 있네

→ 집 앞에 헌살림집이 있네

41쪽


남자들을 따라 전장으로 나간 여자들은

→ 사내를 따라 싸움터로 나간 가시내는

→ 돌이를 따라 싸움판으로 나간 순이는

47쪽


나의 고아들은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잠이 들 것이다

→ 울 외톨박이는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 우리 외톨이는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잔다

57쪽


해초를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찬송가를 부른다

→ 미역을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기쁨노래 부른다

→ 바다풀을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꽃노래 부른다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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