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창비시선 414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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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12.

노래책시렁 373


《하동》

 이시영

 창비

 2017.9.15.



  그제 이른아침에 여수에서 시외버스를 내리는데, 늙수그레한 아재는 바로 앞에서 담배부터 꼬나물고서 불을 붙입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내 시끄럽게 전화를 하던 아재는 길에 하얗게 담배김을 피웁니다. 고흥 버스나루는 2023년에도 버스일꾼에 싸울아비(군인)에 할배에 아재가 담배굴을 이루고, 이따금 아가씨도 담배김을 피워요. 우리나라 버스나루 가운데 고흥처럼 마구 담배를 태우는 데를 못 봤으나, 여수도 비슷합니다. 《하동》을 읽었습니다만, 하동이란 고장이 어떤 빛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하동이라는 고장이 지나온 자취를 엿볼 수조차 없습니다. 어렵게 말하면 ‘관념 + 기교 + 문학수사 + 추억 + 연민 + 허세’일 테고, 쉽게 말하면 ‘삶이 없다’입니다. 글쓴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삶’이라기보다는 ‘허울’입니다.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삶’이라 하지 않습니다. 꿈을 사랑으로 그리지 않고서 쳇바퀴를 돌거나 이쁘장하게 치레하거나 꾸미거나 속이는 몸짓은 ‘허울’입니다. 할배 나이가 되어서까지, 어릴 적 옆집 ‘여고생 머리카락하고 몸에서 나던 향긋한 냄새’를 떠올리는 글이란, ‘고은 성추행 시’하고 뭐가 다를까요? 하나도 안 다르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글이 우리나라 ‘작가회의’요 ‘원로작가’ 민낯입니다.


ㅅㄴㄹ


어느 아랍의 국기 같은 초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저 달을 보며 길 떠나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있다 (극점/31쪽)


가방 들고 걷던 전주여고생. 3년 동안 이웃에 살면서도 단 한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나는 눈 감고도 누나가 지금쯤 어디를 지나는지 훤히 알 수 있었지 ……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가 그만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향긋한 머릿내였던가. 순간 시자 누나가 내 몸에 엎어지며 풍기던 뜨겁고 알싸한 그 내음새는. (시자 누나/50, 51쪽)


+


《하동》(이시영, 창비, 2017)


강변에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 냇가에 나무 두 그루가 섰다

→ 둔치에 나무 두 그루가 있다

11쪽


이호철 선생 댁 세배를 다녀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 이호철 님 집에 절을 다녀오던 길이다

→ 이호철 어른한테 절을 다녀오던 날이다

16쪽


고라니가 파놓은 흙 위에

→ 고라니가 파놓은 흙에

→ 고라니가 판 흙더미에

21쪽


뜨거운 눈 속을 뚫고 솟구쳐오른 파 대가리

→ 뜨거운 눈을 뚫고 솟구쳐오른 파 대가리

24쪽


초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눈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웃는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31쪽


떠나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있다

→ 떠나는 누가 이곳에 있다

→ 떠나는 이가 여기에 있다

31쪽


설치류들의 핏빛 흔적이 자욱하다

→ 생쥐 핏빛이 자욱하다

→ 쥐가 남긴 핏빛이 자욱하다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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