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축제 2023.11.1.물.



모든 하루가 새로 태어나는 날인 줄 안다면 날마다 새잔치(생일잔치)를 하겠니? 사람은 굳이 안 먹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으니, 날마다 애써 밥을 차려서 먹는다면, 너희는 늘 ‘새잔치’를 하는 셈이야. 곁밥(반찬)을 잔뜩 놓아야 잔치이지 않아. 웃고 떠들면서 먹다가 깔깔깔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자리라면 모두 잔치판이란다. 목돈을 들이기에 잔치이지 않아. 오늘 이 하루가 아름다운 줄 느끼면서 날마다 새롭게 사랑씨앗을 심는 길을 펴려는 잔치란다. 너희는 으레 ‘불꽃축제·유자축제’처럼 ‘축제’를 열고 ‘박람회·전시회’를 꾀하고 크게 판을 깔려고 하더구나. 다른 사람들을 그득그득 모아서 춤자랑·노래자랑에 술과 밥을 넘치게 놓아야 ‘잔치’인 줄 잘못 여겨. 그런 모든 허울은 ‘잔치’가 아닌 ‘자랑’이고 자질구레하지. ‘불꽃축제·유자축제’에 무슨 기쁨과 이야기가 있니? 돈을 억수로 쏟아붓는 구경거리는 ‘새잔치’가 아닌 ‘죽음수렁’이야. 모든 하루를 새벽에 맞이하고, 아침에 해바라기로 열고, 낮에 일하며 놀고, 저녁에 둘러앉아 얘기하고, 밤에 몸을 쉬며 다시 꿈을 그릴 줄 알면, 넌 이 수수한 몸짓과 말 한 자락이 늘 기쁘게 살찌우는 줄 알아가겠지. 먼발치에서 찾지 마. 멀리 내다볼 줄 몰라도 돼. 네 마음을 보고, 네 발밑을 보고, 네 머리 위로 뜨고지는 해와 별을 보고, 네 눈망울에서 피어나는 빛을 보렴. 노닥거리는 축제는 치우자. 어질어질 시끄럽게 떠드는 곳은 너희 숨·꿈·사랑·빛을 몽땅 잡아먹지.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집안잔치를 이루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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