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11.7.

수다꽃, 내멋대로 55 누구라도



  ‘교육’이 뭔가? ‘문학’이 뭔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인가? ‘우리 눈길을 새롭게 틔우기’인가? 누구라도 서로 ‘마음’에 깃든다면, 또는 ‘나와 너로 만난’다면, 우리가 왜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말썽을 말썽이라 말하’는지 조금은 어림하리라. 또는 먼 옛날에 말이 어떻게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는지 가만히 그리고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짚고 생각을 기울인다면, 왜 ‘벙어리를 벙어리라 말하’는지도 알겠지.


  우리말 ‘벙어리’는 입으로 말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저 이뿐이다. 따돌림말(차별어)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무엇이 다른’ 줄 나타낸 이름이다. 말소리를 내지 못 하는 사람인 줄 알리고 알아야, “저놈은 왜 암말도 안 혀? 내가 그리 싫은가? 내 말이 못마땅한가?”처럼 엉뚱하게 짚지 않는다. 그저 ‘다른’ 결을 나타내기에 ‘말(이름)’이다. 돌을 돌이라 하고 모래는 모래라 하고 흙은 흙이라 한다. 다르니까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 나무하고 풀에도 ‘나무’하고 ‘풀’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인다. 숱한 나무와 숱한 풀에도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인다. 얼핏 비슷하거나 똑같아 보이더라도, ‘같지 않’기에 이름을 붙일 뿐이다.


  ‘벙어리’라는 오랜 낱말은 ‘벙긋·방긋·봉오리·봉우리·보다’하고 말밑이 같다. ‘벙어리’라는 말소리가 처음 태어난 뿌리와 뜻과 결은, ‘꽃과 메(산)와 웃음과 눈짓(봄)’을 아우른다. 소리없이 웃기에 ‘벙긋·방긋’이라 하고 ‘빙그레·방그레·벙그레’라 한다. ‘빙글·방글·벙글’이라 하고 ‘싱글벙글·싱긋벙긋’도 있다. 정 ‘벙어리’라는 이름이 못마땅하면 ‘벙긋님’이나 ‘싱긋님’처럼 이름을 새로 붙일 수 있다. 단출히 ‘벙긋’이나 ‘싱긋’만으로 나타내어도 된다.


  갓 벌어지는 꽃은 ‘봉오리’를 이룬다. 망울은 뭉친 모습이요, ‘봉오리’는 벌린 모습이다. 꽃봉오리는 그야말로 ‘소리없이’ 벌어지면서 곱고 향긋하다. 오래오래 이언 봉우리는 그저 높고 묵직하다. 말없이 기나긴 나날을 이어온 봉우리는 하염없이 높고 듬직하다.


  우리는 무엇을 눈으로 알거나 살피려 하면서 ‘보다’라 한다. ‘보다’는 그저 ‘눈으로 움직여서 알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벙긋·방긋·봉오리·봉우리·보다’ 같은 말결을 밑뿌리로 삼아서 지은 낱말인 ‘벙어리’이다.


  ‘바보’도 놀림말이 아니다. ‘밥보’가 밑말이다. ‘밥벌레·애벌레’하고 맞물린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인 애벌레’를 사람한테 빗대면서 가리킨 ‘바보·밥보’이다. 그러면 애벌레를 왜 ‘밥벌레’라 했는지 헤아릴 노릇이다. 애벌레(밥벌레)는 참말로 잎갉이만 한다. 애벌레(밥벌레)한테는 입과 똥꼬만 있고, 눈코귀가 없다. 애벌레(밥벌레)는 말을 못 하고 듣지 못 하고 보지 못 한다. 그저 허물벗기를 하면서 몸뚱이만 키운다. 이러다가 어느 날 더는 먹지 않는데, 잎갉이(밥먹기)를 멈춘 애벌레(밥벌레)는 갑자기 입에서 실을 한 가닥 내놓는다. 먹기만 하던 먹보인 밥벌레가 입에서 한 가닥 실을 내놓더니 가지에 살짝 붙이고는 주루루 잇는다. 입에서 나오는 한 가닥 실로 몸을 돌골 만다. 실은 끝없이 나오면서 온몸을 다 감쌀 뿐 아니라 도톰하게 덮는다. 이제 실가닥이 더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내놓은 ‘실로 지은 집’에 옴쭉달싹 못 하면서 까무룩 잠든다. 모든 애벌레는 ‘고치(곳)’를 틀면서 눈물앓이를 하고 꿈앓이를 한다. 내도록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앓다가 문득 ‘새로 태어나는 그림’을 알아차리고, 이제는 온몸을 펄펄 끓여서 사르르 녹인다. 이 무렵 고치는 따끈따끈하다. 따끈따끈하게 바뀐 고치는 여러 날에 걸쳐서 울긋불긋 알록달록하게 너울치더니 어느 날 가만히 있고, 이제 고치 위쪽에 구멍을 뽕 내고는 새숨결 하나가 천천히 기어나온다. 바로 ‘나비’이다.


  예부터 ‘바보(밥벌레·애벌레)’는 ‘날개돋이’를 하는 나날까지 천천히 놀고먹으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사이에 느긋이 철이 드는 사람으로 여겼다. “앞으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을 느긋이 그리면서 지내는 사람”은 누구나 ‘바보’인 셈이다. 또한 우리말에서 ‘-보’를 붙일 적에 낮춤말일 수 없다. 그야말로 말도 넋도 삶도 안 들여다보려 한다면, 껍데기에 휘둘려 눈을 감고야 만다.


  요사이는 ‘비장애인’ 같은 말이 태어나는데, ‘비장애인’이라는 일본스러운 한자말은 ‘장애인을 아끼는 말’일 수 없다. 오히려 ‘장애인을 장애라는 굴레에 가두는 말’이 ‘비장애인’이다. 왜 사람을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로 가르려 하는가? 사람을 ‘장애’가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아이도 저 어른도 오로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말씨가 확 다르다. 더구나 ‘비-’를 붙이는 말씨는 지난날 얼음나라(일제강점기)일 무렵에 일본이 사람들을 억누르며 가두던 ‘비국민·비애국·비충성’ 같은 끔찍한 말씨에서 번진 사나운 일본제국주의 말씨이기까지 하다.


  다리를 절뚝이거나 절기에 ‘절름발이’라고 한다. ‘젊은이(청년)’라는 우리말은 ‘(다리를) 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나이가 푸릇푸릇한 사람을 왜 ‘젊은이’라는 낱말로 가리키겠는가? 아직 덜 배우거나 덜 익었기 때문에, 섣불리 ‘힘’으로 나서다가는 그르치거나 기울고 말기에, 서두르거나 달려들지 말라는 뜻으로 붙이는 이름인 ‘젊은이’이다. 그리고 펄펄 끓고 불타오르는 나이인 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서 모두 온몸으로 겪어내거나 부딪히려고 뛰어들기에 쉽게 다친다고 여기는 ‘젊은이’이다. ‘젊다’하고 ‘절다’는 나란한 낱말인데, 다리를 저는 삶이란, 그만큼 배우고 겪고 해본 일이 많으면서, ‘몸소 배우는 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여겼다. 나이가 어리게 보여서 ‘젊은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이만 어리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따로 ‘철없다’고 여긴다. 나이값을 해야 할 사람이 나이값을 안 하면서 겉모습만 ‘어려’ 보이려고 하니까 ‘철딱서니없다’고까지 한다.


   ‘다리’란 잇는 곳이자 몸이다. 다리를 전다면, 이곳(이 사람)하고 저곳(저 사람)을 슬기롭게 잇는 마음이 아직 없거나 얕다는 뜻이다. 다만, 아직 없거나 얕을 뿐, 또 부딪히고 새로 겪고 다시 해보면서 차근차근 익혀 간다. 그러니까 ‘젊은이’는 ‘바보’하고 비슷한 얼개일 만하다. 눈물앓이를 거쳐서 날개돋이를 하는 애벌레처럼, 온누리 모든 일을 몸소 맞아들이면서 기쁘게 배우는 빛이라서 ‘젊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둘레를 보라. ‘젊게’ 보이려고 얼굴이나 몸매를 꾸미는 사람들이 넘친다. 철들거나 사랑을 익히는 길이 아닌, 그저 겉몸뚱이만 보기 좋게 꾸미려고 든다.  ‘젊다=아직 철들지 않다’를 가리키고, 이래저래 보면, ‘젊다=바보(밥보)=애벌레=앞으로 고치에 깃들어 꿈을 고요히 그리고서 나비로 깨어날 길에 서는 사람’인 얼거리이다. 이 얼개를 읽을 이웃을 만나고 싶다.


  어려 보이려고 꾸미는 사람은 어리석다. 젊어 보이려고 꾸미는 사람은 절뚝거린다. 어린이는 어른한테 사랑을 가르친다. 푸름이(청소년)는 어른한테 숲을 가르친다. ‘벙어리(꽃망울님)·장님(잠님·꿈님)·앉은뱅이(앉은뱅이꽃님·봄꽃님)·젊은이’라는 이름에 어떻게 사랑을 담았는지, 이 이름을 말소리로 얹으면서 서로 어떻게 깨어나고 피어나려고 했는지 헤아릴 적에 우리는 저마다 어진 어른으로 선다.


  누구라도 아기로 태어난다. 이 별을 알려고 알에서 태어난다. 엄마알하고 아빠알을 함께 맞아들여서 태어나는 아기는, 하나하나 새로 알아가는 기쁨을 웃음꽃과 춤노래로 어버이한테 베푼다.


  틀을 세우려 하면 틀리고 뒤틀리고 비틀린다. 틈을 내려 하면 틔우고 싹트고 움터서 튼튼하다.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길이 사뭇 다르다. 아무 말이나 쓰기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아무개로 갇힌다. 알(씨알·씨앗)로 삼을 말을 가리고 생각해서 쓰기에 알차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알아가는 ‘나’로 서면서 날개가 돋는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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