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나방 날다 2023.10.23.달.



가을이 깊어 겨울이 코앞이지만, 잎을 갉는 애벌레나 풀벌레가 있어. 이제 느긋이 잠들고서 긴긴 겨울을 ‘알’로 포근히 꿈꾸면 머잖아 봄이 새롭게 올 테지만, 겨울을 아랑곳않는 몸짓이지. 어쩜녀 겨울이 늦거나 퍽 푸근해서, 나뭇잎이나 풀잎이 제법 오래 남을 수 있어. 그러나 가을이나 겨울에는 하루나 몇날쯤 얼어붙으면 잎이 모두 말라서 떨어지지. 겨울에도 푸른잎으로 살아가는 늘푸른나무라면, 조금 추워도 거뜬해. 더구나 늘푸른나무하고 같이 살아가는 애벌레는 일찌감치 꿈나라로 갔어. 10월이 저물려 하지만 아직 푸른 차조기잎이나 모시잎을 갉는 애벌레를 보았니? 애벌레로서는 포근한 볕에 푸른 잎사귀가 있으니, 늦가을로 가는 길에도 알에서 깨어나서 움직인단다. 신나게 갉고 자라며 어느 날 고치에 깃들어서 날개 단 새몸을 그리지. 이듬해 봄을 기다리면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굳이 안 기다려도 된다고 여길 수 있고, 얼른 새로 피어나고픈 꿈일 수 있어. 어느 날 훅 얼어붙느라 그만 굳어서 죽을 수 있고, 날씨가 어느새 바뀌어 ‘안 어는 겨울’이 흐를 수 있어. 애벌레는 애벌레 나름대로 철을 느끼고 바람을 읽고 해를 헤아려. 잘 생각해 봐. 애벌레가 철을 못 읽거나 잘못 읽으면 그대로 목숨을 잃어. 애벌레가 목숨을 잃으면, 풀꽃나무는 꽃가루받이를 제대로 못 할 수 있어. 그래서 풀꽃나무도 늘 철과 바람과 해를 느끼고 읽으려 하지. 풀꽃나무는 애벌레한테 알려주어야 하고, 애벌레도 풀꽃나무 마음소리를 느끼고 읽을 수 있어야 하지. 다들 꾸준히 끝없이 마음을 나눠. 드디어 날아오른 나방은 이 모두를 이룬 기뻐하는 몸짓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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